정경화 소품집「Souvenirs」, 느릿한 활긋기 낮은울림

  • 입력 1999년 8월 25일 19시 34분


9월 전국 순회연주를 갖는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가 EMI사에서 소품집 음반을 냈다. 그가 소품집을 내놓은 것은 14년전 ‘콘 아모레’(사랑과 함께) 이후 처음이다.

음반 제목은 ‘Souvenirs’. 프랑스어로는 ‘추억’이 되고, 영어로는 ‘선물’ 또는 ‘기념품’이 된다. 지난해 ‘지천명(知天命)’의 나이를 넘긴 정경화가 우리에게 전하는 추억 선물은 무엇일까.

음반을 걸어본다. 어라? 왠지 바이올린이 커진 것 같다. 언뜻언뜻 비올라처럼 나지막하게 울리는 인상. 무엇 때문인가.

막무가내식의 표현일 지 모르지만 낮은 음의 선율에서 그는 느릿하게, 높은 음의 선율에서는 빠르게 빠르게 활을 그어댄다. 소리높이 흐느낀다는 인상은 애초에 자리잡을 데가 없다. ‘타이스 명상’의 애절한 e현 울림도 물기가 빠진듯한 인상이다.

반면 바흐의 ‘아리아’는 어떤가. 요즘의 유행과 달리 정경화는 ‘g선 위의 아리아’라는 애칭 그대로 연주한다. 가장 낮은 g현 위에서만 움직이는 것이다. 어쩌면 낡은 유성기판 연주를 듣는 것처럼 촌스럽게 들릴 수 있는 악보지만, 느릿하게 노래하는 그의 바이올린에서는 넓고 풍요한 울림이 배어나온다.

정경화 특유의 활긋기는 바로 이런 부분에서 빛을 발한다. 깊이 누르는 대신 활의 속도를 늦춰 목멘 듯한 촉촉함을 내비치다가, 곧바로 얕고 빠르게 그으면서 살짝 빛을 내비친다. 양쪽 사이를 잇는 것은 울퉁불퉁한 접점이 아니라 산뜻하게 이어지는 매끈한 접촉면이다.

반주자 골란의 탄력있는 리듬감, 좋다. 그렇지만 슈베르트 ‘아베 마리아’의 1분51초 부근에서 치명적인 미스터치가 발견된다. 피아니스트 보다는 귀가 밝지 못한 녹음 엔지니어의 실수다. ‘아름다운 로즈마린’은 해설지의 철자가 틀려있다. 두가지 실수가 보석 위의 긁힘자국처럼 남았다. 또 있다. 전체 음반 분위기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드보르작 ‘유모레스크’를 왜 첫곡으로 넣었을까.

9월9∼17일 열리는 전국순회연주는 새 음반에 실린 소품과 프랑크의 소나타 A장조 등으로 꾸며진다. 음반 제작 때 반주한 피아니스트 골란도 동행해 앙상블을 이룬다. 02―518―7343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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