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예술]신체화된 예술

  • 입력 1999년 8월 26일 19시 55분


텔레비전으로 브래지어를 만들 수 있을까. 물론 기능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그 모습 또한 꼴불견일 것이다. 그런데 백남준이 1969년에 만든 ‘TV 브라’는 인간이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벌이는 등 비디오예술에서 다양한 화제를 남긴 명물이다. 그것이 명물이 된 것은 비단 백남준의 작품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로 여성이 브래지어의 용도로 착용하였고 예술작품으로도 훌륭한 가치를 발휘하였기 때문이다.

‘TV 브라’ 뿐만이 아니라 백남준은 비디오를 인간의 신체화 된 영역으로 가깝게 끌어들이기 위하여 신체를 위한 다양한 작품을 제작하였다. 텔레비전으로 제작한 ‘TV 첼로’를 비롯하여 ‘TV 안경’, ‘TV 십자가’, 심지어는 ‘TV 페니스’등을 제작하였다.

‘TV 브라’가 세상에 등장한 것은 백남준이 ‘인간화된 기술’을 언급하던 1969년의 일이다.

멀티미디어가 예술과 적극 조우하기 시작하던 당시, 뉴욕의 하워드 와이즈 화랑은 비디오예술사에 기념비적인 전시회를 마련하였다. ‘창조적 매체로서의 텔레비전’으로 명명된 이 전시에는 당시 텔레비전을 주요 매체로 사용해 작업하던 12명의 작가가 초대됐다. 화랑 주인 하워드 와이즈는 백남준과 공동작업을 하던 샬로트 무어만을 백남준과 한 팀으로 지명하여 공동출품 할 것을 권유하였다. 이 전시회에는 이들 이외에도 비디오예술사의 중심에 서 있는 프랭크 질레트와 아이라 슈나이더, 알도 탐벨리니 등이 초대되었다.

‘TV 브라’는 백남준이 여성의 신체를 시각적 대상으로 설정하여 시도한 첫 비디오조각이다. 원래 제목은 ‘살아있는 조각을 위한 TV브라’인데 백남준의 비디오예술과 무어만의 음악, 그리고 이들의 퍼포먼스가 함께 이루어내는 매우 상징적인 작품이다. 또 이 작품은 크기에서부터 무어만을 위하여 조각되었기 때문에 무어만이 착용하고 음악을 연주하거나 퍼포먼스를 할 때만이 작품이 완성되는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다른 비디오조각과는 성격적으로 크게 다르다고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매우 간단하다. 3인치 짜리 소형 텔레비전이 각기 상자 안에 들어 있다. 이 상자는 무어만의 양쪽 가슴에 단단하게 매어져 있다. 상의를 벗은 채 텔레비전 브래지어를 양쪽 가슴에 착용한 무어만이 첼로를 연주하고 있는데, 이 브라운관에서는 현재 방영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그램과 미리 촬영된 비디오테이프, 폐쇄회로에 비친 관객들의 모습, 그리고 첼로의 소리에 따라 텔레비전 화면이 변하도록 한 영상이 나타난다. 무어만이 연주하는 첼로에는 마이크가 연결되어 있어 첼로를 켤 때마다 소리가 객석에 들리며 텔레비전의 영상이 소리의 영향을 받아 출렁인다.

백남준의 이 작품은 여인의 브래지어가 텔레비전으로 대체됨으로써 보는 이의 흥미와 재미를 더했다. 하지만, 텔레비전을 인간의 몸과 밀착시켜 기술을 인간의 몸과 연결한 중요한 의미를 창조하였다. 이 작품은 60년대 후반 미국사회의 여성해방운동의 물결에 따른 노브라운동에서 자극 받은 작품이기도 하다.

사실 60년대 말에 ‘TV 브라’는 브래지어를 벗자는 일부 흐름과는 동떨어져 있었다. 젊은 세대들의 저항문화와 히피들의 새로운 패션은 고유한 여성스러움의 상징인 브래지어를 벗어 던지는 노브라물결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백남준의 브래지어는 기술이 인간의 신체와 함께 살아 숨쉬는 유기적 역사를 기록하였다.

무어만이 몸에 매단 이 작품의 무게만 해도 3㎏이나 되었다. 전시기간 중 무어만은 매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이 작품을 착용하고 퍼포먼스를 공연하였다. 무어만은 1990년, 어느 잡지에 쓴 글에서 당시 ‘TV 브라’를 착용하였던 자신이 살아있는 조각이었다는 사실을 매우 자랑스럽게 여겼다고 밝혔다.

‘TV 브라’를 입고 무어만이 두 번째 퍼포먼스를 공연한 것은 같은 해 7월 워싱턴의 코코란 갤러리에서 열린 ‘사이버 횡재’ 전시에서였다. 이 전시회에서 무어만은 텔레비전 브라를 입고 첼로를 연주하였는데 무어만의 브라에서는 7월20일 인간의 역사적인 첫 달 착륙장면이 방영되었다.

종전까지 무어만이 착용한 TV브라를 농담정도로 받아들이던 관객들은 달 착륙 장면이 방영된 이후부터 부쩍 관심을 표명하였다. 미국인들은 인간의 오랜 꿈을 실현시킨 과학기술에 대하여 경의를 표하면서 기술이 예술에 활용되는데도 관심을 갖게 된 것이었다. 텔레비전은 월남전 방영을 통하여 정보의 원천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텔레비전은 달 착륙을 방영하게 되면서 그 위력과 의미를 훨씬 더 크게 획득할 수 있었다.

백남준은 이 작품이 공연에서 큰 성공을 거두자 “만약 이 작품을 샬로트가 아닌 다른 첼리스트가 입었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었을 것이다. 샬로트는 고전음악을 전위적으로 연주하며 전위예술을 소화해내는 괴력을 가졌기 때문에 내 작품도 살려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는 또 “인간의 가장 사적인 공간에 과학기술을사용함으로써기술이인간을지배하는것이 아니라, 인간이기술을 사용하기 위한 상상력과 환상을 자극하는데 촉매로 쓰일 수 있다”고 언급하였다.

이용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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