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년 8월의 독일은 온통 괴테로 들떠 있다.터키 지진이나 연방수상 슈뢰더의 인기폭락은 국민들의 일상적 관심사이지만, 200년전 시인의 작품을 오늘에 되새기는 일은 그들이 당연히 받아들이는 정신적 과제이다.
특히 1999년 ‘유럽의 문화수도’로 지정된 바이마르와 주변도시들의 8월은 크고 작은 괴테기념제로 뜨겁다. 튀링엔주의 에어푸르트에서도 17일부터 22일까지 국제 괴테번역가 회의가 열렸다. 세계각국의 괴테번역가들이 초청된 이 회의에서는 괴테문학의 현대적 의의가 재조명되는 한편, 괴테 작품을 번역할 때의 고유한 문제점들이 심도있게 토의되었다.
한국대표로 참가한 필자는 괴테의 한국어 번역에 따르는 문제점에 관해 강연을 하였으며 개인적으로 세계 각국의 괴테번역자들과 번역의 문제점을 토의하는 귀중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우선 필자가 느낀 것은 번역이 21세기 세계문화 교역의 핵심사업으로 떠오르고 있다는 인식이었다. 번역은 관계국 쌍방이 다같이 혜택을 보는 고도의 문화교역이라는 공통된 인식에 접하여 필자는 번역가를 정신적 날품팔이꾼 정도로 홀대하는 우리나라 번역문화의 현장을 떠올리며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그 다음으로 중요하게 느낀 점은 독일인들이 괴테를 대하는 태도였다. 거기에는 자국 문화에 대한 국수적 맹신이 아니라 세계문학을 주장하고 세계시민에로의 길을 추구했던 문화적 다원주의자 괴테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깔려 있었다.
우리가 반만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문화민족으로서 진정 인류문화의 발전에 기여하고자 한다면, 우리의 문화지도를 지금처럼 온통 영어 일색으로 통일해도 될것인가?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정신적으로 편식하지 않는 문화적 다원주의가 아닐까? 서울행 비행기 안에서 필자에게 다가온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