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의 책]남궁석/문명서에서 깨친 '정보화의 길'

  • 입력 1999년 8월 27일 19시 10분


내가 처음 책 읽는 재미에 빠져든 것은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려웠던 시절, 변변히 읽을 거리가 있을 리 만무한 시골학교에 담임선생님이 40여권의 위인전기만화를 사서 학급문고를 만들어 주셨다. 아직도 그 만화의 장면들이 기억난다. 김유신 세종대왕 이순신 유관순….

중학교를 졸업하고 진학할 형편이 못돼 2년간을 떠돌아 다니면서 이광수를 알게 됐다. 어린 나이에 삶의 고단함 속으로 던져진 내게 이광수의 소설은 절망과 시름을 이기게 하는 힘이었다.

고등학교 입학 후 모파상과 헤밍웨이에 빠져 한국어로 번역된 헤밍웨이는 거의 모두 읽었다. 대학에서는 주요 한국문학을 모두 독파한다는 목표 아래 이인직 염상섭 김유정 이효석 현진건 채만식 계용묵 김동리 김동인 등을 섭렵했다.

대학 시절에는 카뮈와 사르트르 등 당시를 풍미한 실존주의 문학과 그 뿌리인 플라톤 칸트 헤겔 도스토예프스키 듀이 키에르케고르 타고르 등 철학도로서 읽어야 할 책들에도 몰두했다. 서양을 제대로 알아보자는 생각에서 희랍비극에서부터 단테 보카치오 세르반테스를 지나 시엔키에비치지드 레마르크 괴테 스탕달 헤세에 이르기까지 서양소설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사회로 나오면서 나의 독서 경향은 다소 현실적으로 변해갔다. 첫 직장에 근무하면서 다나베의 ‘흑자경영 시리즈’라는 24권짜리 전집을 비롯해 피터 드러커의 저서들과 세계 대기업 경영사 등 경영학 및 사회학과 관련한 책을 읽었다. 직장을 옮길 때마다 그 기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길이 모두 책에 있었다. 삼국지 손자병법 한비자 전국책 수호지 마키아벨리 등 전술 전략에 대한 책에서 나온 기업경영의 아이디어는 현실 경영에 많은 도움이 됐다.

미국 유학시절에는 주로 세계 문명의 흐름에 대한 책을 읽었다. 이 때 토플러의 ‘미래의 충격’, ‘제3의 물결’, ‘권력이동’ 등을 접하고 정보화에 대한 안목을 넓히게 됐다. 정보화는 더 이상 컴퓨터 조작이나 기업 생산성 향상을 위한 기술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인류 문명의 대세(大勢)였다.

이 후 신채호의 ‘조선상고사’, 이선근의 ‘국난극복사’, 함석헌의 ‘뜻으로 본 한국역사’, 강무학의 ‘아리랑 오천년사’ 등 한국사 관련 서적을 읽으면서 우리 민족의 미래와 정보화의 관계가 연결됐다. 내가 해야 할 일도 명확해졌다. 정보화를 전도하고 그 초석을 놓는데 작은 힘이나마 더하고 싶었다.

최근 공직자들의 몸가짐과 관련한 보도를 보면서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를 다시 꺼내 들었다. 자연과학은 새로운 것일수록 인간에게 편의를 주지만 책은 고전일수록 인간의 정신세계에 감동과 교훈을 준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몽매한 후학을 질타하는 다산 선생의 가르침은 200년의 시간 저 편에서도 아직 신선하다.

정보통신부장관 남궁 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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