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일의 책]'당신의 미술관'

  • 입력 1999년 9월 2일 11시 43분


▼'당신의 미술관 1, 2' 수잔나 파르취 지음/홍진경 옮김/현암사 펴냄/전2권 각 12,000원▼

대영박물관, 내셔널 갤러리, 파리의 루브르박물관, 빈의 벨베데레, 뉴욕의 메트로폴리탄…이름만 들어도 미술애호가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장소들이다. 해외여행길에 유명한 미술관 한군데쯤 들르는 건 이제 예사로운 일이 됐다. 물론, 제대로 둘러보려면 최소 며칠에서 몇주일은 걸린다는 대형 미술관을 '주마간산'격으로 1, 2시간동안 '전력질주'해 마스터한다든지, 입구에서 사진만 찍고마는 '한국식 관람법'이 여전하긴 하지만.

미술책에 박혀 있던 '그 작품'을 실물로 확인하며 예술적 감흥에 젖는 것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추억이 되곤 한다. 하지만 그 경험을 위해 매번 비행기에 오를 수는 없는 일이다. 또 실제 간다 해도 인간의 주의력이란 한계가 있어 소규모 전시관이라도 그 안의 모든 작품을 다 주의깊게 감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안을 찾아보자. 요즘 국내에는 화집이나 잘 만든 미술사 책들이 적잖이 나와 있다. 독일의 미술사가 겸 칼럼니스트인 수잔나 파르취의 '당신의 미술관'(원제 Haus Der Kunst)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이 책은 동굴벽화부터 현대미술까지 서양미술사 전체를 포괄한다. 특이한 것은 책이 한 채의 가상미술관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선 저자의 서술방식 때문이다. 책 속의 미술관 안내도에서 알 수 있듯, 인류의 미술변천사는 각 시대별로 나누어 제1실부터 16실까지 개별적인 방으로 꾸며졌다. 그리고 그 속에 세계 유명 미술관이나 교회, 이름난 성(城)에서 골라온 230여종의 회화 조각 건축물등 중요한 미술품들이 '전시'된다.

미술관에 '들어가기 전'에 저자가 들려주는 사전지식도 숙지할 만하다. 우리가 오늘날 보고 있는 미술품들은 대부분 어떤 목적을 지니고 세상에 나온 것들이다. 도처에 흩어져 방치되거나 버려진 미술품들을 모은 수집가들의 공로도 새삼 기억해야 할 부분이다. 수많은 왕과 대공, 귀족, 이후 많은 부유한 시민들이 미술품을 소유했지만, 꽤 가까운 과거까지도 대부분의 민중은 그런 미술작품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또 많은 미술품들은 예전에 놓여 있던 자리와는 전혀 상관없는 곳에 와 있기 일쑤다.

미술의 역사와 달리 미술관의 역사는 매우 짧다는 점, 미술관은 미술품을 보여주는 것외에 미술품의 보전이라는 역할도 수행한다는 점, 미술관에 놓인 미술품을 이해할 때 보다 많은 사전지식과 사려깊은 시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대목들이다.

저자는 마치 관람객들을 이끌고 미술관 이곳 저곳을 안내하듯 미술관 밖이나 전시실 복도 등을 실감나게 묘사하며 '돌아다닌다'. 독자는 그를 따라 제1실부터 16실까지 가상의 미술관을 산책하면서 기원전 3만년경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미술사에 대한 조감도를 제공받는다. 같은 주제도 시대가 바뀌면서 달라지고, 그 그림을 통해 당대 사람들이 어떤 느낌과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는지도 알게 된다. 일반적인 어투, 전문용어 대신 이해하기 쉬운 말을 쓴 것도 퍽 좋다. 그래서, 길지만 결코 지루하지 않은 관람이다.

저자가 당신을 위해 마련한 이 미술관을 꼼꼼하게 둘러보자. 아마 그 뒤 어느날엔가 다른 미술관을 방문할 때는 아주 자신있게 더 많은 작품을 더 쉽게 감상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김영신<동아일보 뉴스플러스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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