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발견하기도 쉽지가 않으니, 어떠한 책들이 현재의 ‘나’를 만들었는지를 밝혀내는 작업 또한 쉽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작업은 내가 어떤 분야에서 부실공사를 했는지를 스스로 검진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나의 자아를 지탱해주는 몇개 기둥들의 근원을 탐색할 기회를 준다.
가스통 바슐라르의 저서들, 특히 ‘꿈꿀 권리’는 직관과 상상력을 통해 사물의 본성에 다가가는 방법을 내게 일깨워주었다. 사물의 물질적 요소들에 대한 깊은 사유를 통해 그 사물을 총체적으로 경험하고 그 본성을 깨닫는 일련의 과정을 바슐라르는 ‘몽상’이라고 불렀다. 단순한 이야기 전달의 차원을 뛰어넘는 영화를 만들기 위해선 사물의 물질적 요소들과 그 사물이 지닌 색깔, 선 형태 움직임 등에 대한 ‘몽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렇기에 바슐라르의 몽상의 시학이 내게 되찾아준 꿈꿀 권리는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창작 행위를 지속해 나가는데 중요한 원동력이 되고 있다.
‘꿈꿀 권리’가 내 안에 카오스의 세계를 만들었다면 H 스튜어트 휴즈의 ‘의식과 사회’는 내 안에 코스모스의 세계를 만든 책 중의 하나이다. 이 두개의 세계는 끊임없이 갈등하고 융합하며 나도 알 수 없는 내 안의 나를 만들어내고 있다.
이광모(영화감독·중앙대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