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구효서(42)가 네번째 창작집 ‘도라지꽃 누님’(세계사)을 완성했다. 18일경 발간 예정. 95년 ‘깡통따개가 없는 마을’이후 4년만이다.
새 창작집 속에 실린 열 한 편의 중단편. 그속에는 일상의 무게와 가학을 버티지 못하고 도주하는 개인들이 있다. 그 도주와 붕괴의 뒤편에는, 아픔과 미움마저 나누지 못하는 ‘의사소통의 단절’이 도사리고 있다.
‘그녀는 누구와도 다르지 않았다’에서 주인공의 아내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영위하다가 어느날 남편이 싫어하는 색 스카프를 선물하자 잠적해 버린다. ‘오후,마구 뒤섞인’에서의 희생자는 국가대표 선발에의 압력을 견디지 못해 투신자살한 고교생 리듬체조 유망주다. 주인공은 그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를 구원하지 못한, 단절된 이웃에 불과하다.
‘아우라지’에서는 일상속에 틈입한 의사단절의 위기가 더욱 강렬하게 형상화된다.캠퍼스 커플인 연인들은 관계의 ‘돌파구’를 얻기 위해 알지도 못하는 정선으로 향한다. 풍경들은 거대한 암석처럼 연인들의 마음을 짓누르고, 서로가 나누는 대화는 의미없이 겉돈다. 두사람은 서로의 소통경로를 ‘격렬하게 두들기듯’육체의 교합속으로 허둥대며 빠져들지만, 두사람 사이에는 ‘아우라지’처럼 깊은 강이 가로놓여 있음을 확인할 뿐이다.
작가는 “이번 창작집은 40대에 나온 첫 산물이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일상적이면서 사소한 것에 집중하게 된다. 아직도 사회에 온존하는 아픔과 궁핍을 보듬어보려 했다”고 말한다.
다행히도 그의 소설에 구원의 메시지는 살아있다. ‘포천에는 시지프스가 산다’에서 주인공인 농아 사내는 식물인간 상태의 부인을 수발하면서도 나무조각으로 탑을 쌓으며 고된 일상을 고도의 놀이로 승화한다. 그 탑은 어렵게 쌓자마자 허무는 법을 배워야 하는 탑이다.
“삶이란 것이 본디 버겁고 힘들지만, 그 삶을 충실하게 극복한 작은 인간들의 모습이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이들에게서 지혜를 배워야 하지 않을까.”
작가는 최근 ‘전복적 상상력’을 동원해 임꺽정을 악한으로 묘사한 장편을 쓰고 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