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쟁점대담]공부 어떻게 해야 하나?/유시민-정재서

  • 입력 1999년 9월 10일 19시 19분


▼「지금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인가」 / 현대사상 99년 가을호 / 민음사 / 8000원▼

한국의 지식인은 과연 독자적 사유의 지평을 열지 못했는가, 우리의 학문적 상황은 정녕 후진적인가. 이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온 학술계간지 ‘현대사상’이 이번엔 기획특집 ‘지금 우리에게 공부란 무엇인가’를 마련했다. ‘정전(正典)없는 시대, 다시 시작하는 공부’를 주제로 한 좌담과 ‘나에게 공부란 무엇인가’에 관한 젊은 지성들의 체험적 글을 실었다. 시사평론가 유시민씨와 이 책의 좌담에 참여한 정재서 이화여대교수(중문학)의 대담을 통해 이시대 공부의 의미와 방향을 탐색해본다.

△정재서〓공부를 잘한 것도 없는데 이런 얘기를 하려니 좀 쑥스럽군요. 이 책의 기획 주제를 먼전 생각해보죠. 지금 왜 공부가 문제인지. 각 학문의 경계가 무너지고 인문학의 위기가 거론되는 등 전통적 의미의 학문이 동요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학문이라는 개념이 권위적이라면 공부라는 개념은 탈권위적이고 실천적 체험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엄숙함에서벗어나근본적으로진솔하게 다시 생각해보자는 게 아닐까요.

△유시민〓동의합니다. 지금은 지식정보의 바다를 헤쳐나가야 합니다. 지식이 독점되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그래서 이 책에서 선택한 공부라는 개념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정〓과거의 공부를 좀 살펴보죠. 전통적인 의미의 공부는 내적인 자기 성찰, 이를 통해 지식과 삶의 일체를 추구한 것이었다고 봅니다. 그런데 현대에 와선 학문이 분화되었고 공부라는 개념도 다양화되고 기능적으로 변했습니다.

△유〓과거든 현재든 공부는 궁극적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새로운 지식정보를 만들거나 취득해나가는 일이라고 봅니다. 지금은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접합니다. 지식의 특권이 상실되고 개방화 다양화되었음을 말하는 거죠.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공부에 대한 회의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인문학자들이 이같은 변화에 잘 적응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정〓이 책의 기획좌담에서도 얘기가 나왔지만 지금 대학사회에서는 공부와 연구가 괴리되어 있습니다. 자기 공부보다는 연구비를 받는 프로젝트 연구가 성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에 어떤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지 제대로 진단해야 합니다.

△유〓학문은 학자의 자기 완성과 현실적 실용성을 모두 충족시켜야 합니다. 이학이나 공학분야는 이 두 측면이 비교적 잘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문학은 속성상 그렇지 못합니다. 갈등이 불가피한 거죠. 그런데 이것을인문학의위기나타락이라고 하는 것은한쪽에치우친생각이라고 봅니다.

△정〓물론 인문학의 현실적 실용적 측면도 필요합니다. 인문학이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인정합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의 분위기는 너무 실용적이고 기능적인 차원으로 가고 있습니다. 인문학 공부하는 사람이 이공계열과 똑같은 방식으로 실용성을 추구할 수 있는지, 학문이란 것이 늘 현실을 전제로 해야 하는지, 이건 중요한 문제입니다. 가령 돌고래의 수중 음파 연구를 예로 들어보죠. 그것을 연구한 해양학자는 돌고래 자체를 연구한 것이지 처음부터 현실성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이것이 훗날 맹인들의 지팡이에 응용되어 효용성을 가져왔습니다. 순수학문을 효용성이 없는 자기만족으로 규정해서도 안됩니다. 인문학은 실용적인 학문의 기초와 그 방향을 마련해주는 가치가 있습니다.

△유〓중요한 말씀입니다. 기초학문의 성과는 당장은 아니지만 먼훗날 엄청난 효용을 가져온다는 점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문학은 학문과 사회와의 관계, 대중의 욕구를 잘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면가치를 추구하다보니 비판과논쟁이 없습니다. 인문학이 내면가치를 탐구한다고 해도 현실을 늘 생각해야 합니다. 이 책의 필자로 참여한 프리랜서 진중권씨나 고종석씨는 글을 써서 지식을 전달하는 사람입니다. 현실을 생각하죠. 그러니 그들로선 비판 논쟁이 없는 학계를 비판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정〓인문학의 현실 적응력도 중요하지만 인문학의 존재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숙고해야 합니다. 단기간의 효용성을 중시하는 최근의 풍조는 인문학 등 기초학문의 쇠퇴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 학계의 폐쇄성 권위주의 식민성은 시급히 극복해야 합니다.

△유〓사람들을 ‘기지촌 지식인’이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죠. 특히 무조건 외국 박사를 선호하는 풍조는 너무나 위험합니다. 이같은 경향은 인문 사회과학 분야가 더 심한 것 같습니다. 지식인은 공부하는 프로페셔널입니다. 프로정신이 필요하단 말이죠. 공부를 하면서 사회현실에 봉사하고 그러면서 대가를 얻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정〓그지적에 동의합니다. 다만 전통적인 자기성찰의 공부 방법도 중요합니다. 그건 정신과 삶의 질을 높여주는 중요하니까요.

〈이광표기자〉kp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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