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性차별' 올 추석부턴 없애자

  • 입력 1999년 9월 12일 17시 50분


◆주부들 '명절증후군' 심각

‘추석에 시댁 현관문을 들어서면서부터 나올 때까지 끊임없이 가사노동을 하게 된다. 남편과 남자들은 먹고 누워 TV보는 일 뿐.’

7월1일 남녀차별금지법 시행을 계기로 한국여성민우회가 조사한 여성차별사례 2040여건 중 1위를 차지한 건 ‘명절, 제사상의 성차별’이었다. 이같은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차례지낼 때, 언제나 남자들 먼저 절한다. 나이가 어려도 남자니까. 또 아직도 여자들은 부엌이나 거실 등에서 지켜보기가 일쑤다. 여자들은 조상의 후손이 아닌가.’

◆남자도 장보기등 도와야

‘해마다 되풀이 되는 일이지만 명절이면 차례가 끝난 뒤 나는 친정에 가본 적이 없다. 시누이 남편이나 그밖의 손님을 맞이해야 하기 때문에.’

올 추석을 앞두고 있는 주부들도 예외는 아니다. 그래서 추석연휴를 시댁에서 보내야하는 젊은 주부들 중 상당수가 ‘명절증후군’을 앓고.

여성민우회는 최근 ‘웃는 명절, 명절과의 평등한 만남’을 위한 ‘좋은 명절 만드는 다섯가지 방법’을 마련했다. 추석을 ‘여성들의 노동절’이 아닌 가족 모두의 행복한 명절로 만들자는 취지.

▽남녀가 함께 일하고 함께 쉰다〓상차림을 준비하는 것도 조상 모시기의 일종. 절만 하고 일은 하지 않는 것도 불경(不敬)이다. 함께 장보고 음식도 함께 만들고 함께 설거지하면 일이 빨리 끝난다.

▽조상모시기, 딸도 할 수 있다〓수십년을 함께 한 가족이 있는 친정에도 못가면서 시댁조상 모시기에만 매달리는 것은 부당하다. 딸도 당당히 부모의 제사를 모실 수 있다. 추석차례도 장남 만이 아니라 여건에 따라 모든 형제가 돌아가며 지낸다.

▽시댁과 친정을 번갈아 방문〓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평등해 진다. 설에 시댁 가족들과 모였다면 추석에는 친정가족들과 함께 지낸다. 명절선물은 시댁 친정 차별없이 정성껏 한다.

▽제사 때 여자도 절을 한다〓명절이 남성만의 명절이 아니듯, 조상도 남성만의 조상이 아니라 가족 모두의 조상. 일도 음복도 절도 함께 한다. 여성도 조상 모시기의 당당한 주체이기 때문.

◆시댁과 친정 번갈아 방문

▽여성에게만 해당하는 명절금기를 없앤다〓명절 아침에 걸려온 딸 친구의 전화. 재수없다고 여기거나 예의가 없다며 나무라는 것은 ‘구식’. 생리중인 여자는 부정타서 음식준비하면 안된다는 생각 역시 ‘편견’.

‘사위에게 주는 요리책’의 저자 중 한 사람인 박은경씨(35)는 “결혼 후 처음에는 명절 자체를 고역으로 생각하는 ‘명절증후군’에 시달렸다”며 “요즘엔 남편과 함께 휴가여행을 떠나는 등 명절을 즐겁게 또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