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이 앉을 공간엔 미리 향수를 뿌린다. 하얀 테이블, 하얀 소파, 하얀 스탠드가 제자리에서 10㎝도 벗어나지 않아 있음을 확인한다. 대화 중 10분마다 크리넥스로 입가를 훔치고….
디자이너 앙드레김. 티끌만한 때가 보일까봐 똑같은 모양의 옷을 하루 세번 갈아입는 사람. 그가 세상에서 가장 아끼는, 돌박이 때 입양한 아들 중도(18·대학1년)에 대한 그의 사랑도 완전무결할까.
“아가(그는 아들을 이렇게 불렀다)가 생기면서 처음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게 됐어요. 내가 죽으면 아가도 혼자가 될텐데, 나처럼….”
◆둥지
어린 중도는 밤마다 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솝우화를 들으며 잠들었다. 이야기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바르고 착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거라”고 말했다. 꾸중을 해도 대들기는 커녕 조용히 제 방으로 들어가 흐느끼는 아들의 모습에 가슴이 미어져 몇일간 디자인을 전폐한 적도 있다.
아들이 중학생이 되어 교복을 입기 전까지 자신이 만든 흰색 세일러복과 반바지를 입혔다. 지금은 아침마다 청바지에 티셔츠와 재킷으로 구성된 옷가지를 색상별로 3세트씩 골라 아들의 침대 위에 펼쳐 놓는다. 아버지는 집을 ‘중도 세상’이라 불렀고, 그래서 손님을 집으로 초대하는 법이 없었다.
◆둥지의 법칙
아들의 용돈은 고등학생 땐 주당 2만원, 대학생인 지금은 3만∼5만원. 얼마전 아버지 생일에 중도는 새하얀 카사블랑카 꽃을 화병 가득히 선물해 눈물이 핑돌게 만들었다.
술 담배를 못하는 건 집안 내력인 듯. 그의 아버지도 그랬고 아들도 그렇다. 이따금 신입생환영회나 MT에서 술을 받아먹고 얼굴이 상기돼 귀가하는 아들에게 그는 말한다. “술은 실수를 부르고 실수는 너를 세상으로부터 외롭게 만들 수 있어. 그러면 가정을 이루거나 지킬 자격이 없어진다.” 중도는 보통 밤 8시반이면 귀가한다.
◆Q&A
“당신의 말투나 표현방식이 여성적이라는 말이 많습니다. 혹시 아들이 영향을 받지는 않을까요?”(기자)
“품성은 천부적인 것입니다. 아들은 착하고 예의바르며 농구와 헬스를 사랑하는 씩씩한 아이입니다. 제가 부드럽다구요? 그것은 어디까지나 친화적이고 사교적인 삶의 방식입니다. 정상의 자리를 지키는 것이 과연 부드러움 하나로 될까요?”(앙드레김)◆둥지의 저편
아들에게 여자친구가 생긴 것같다. 좋은 일이다. ‘들떠보이지 않고 허영스러워 보이지 않는’, 올바른 여자를 사귄다면 얼마든지. 다만 ‘섹시함’에 속아서는 안된다고 일러준다.
때론 아들이 자신에게서 멀어지는 것같다. 어릴적부터 분신처럼 데리고 다니던 아들. 중학교때 함께 오페라 관람을 하고 돌아와 산더미같은 숙제에 눈물 글썽이는 아들을 본 뒤부터 한번도 공식석상에 등장시키지 않았다. 이젠 어학에 심취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좋아하는 아들의 모습에서 행복을 찾아야 할 시기가 된 것같다. 결혼을 포기한 아버지와는 달리 작고 조용하지만 소중한 가정을 꾸미는 모습을 보고 싶다.(앙드레김은 아들의 ‘유명해지지 않을 권리’를 위해 아들의 사진촬영을 고사했습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