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다짐이 앞으로 얼마나 잘 지켜질지는 두고볼 일이지만 그렇다고 통신사생활이 완전히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부문에서 횡행하고 있는 더욱 광범위하고 불법적인 도청 감청 E메일 뒤지기에 대한 대책은 거의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통신공포증의 확산▼
한 대학생은 불법적으로 유통되고 있는 몰래카메라 비디오테이프를 구해 보다가 경악했다. 비디오방에서 낯뜨거운 짓을 벌이고 있는 사람이 바로 자신이었기 때문.
사생활 엿보기에 대한 공포증은 기업인 정치인뿐만 아니라 심지어 수사기관원들에게까지 번져 있다. 그래서 휴대전화를 20∼30개씩 등록해 놓고 돌려가며 사용하거나 중요한 정보는 필담(筆談)을 나누는 등 나름대로의 보안 방법을 쓰는 수사기관원들이 늘고 있다. 용산전자상가나 종로 세운상가 등 전자상가에서는 전화 및 무선 도청기들이 날개돋친 듯 팔리고 있다. 심부름센터의 개인정보 빼내기도 심각한 상태.
한 PC통신업체는 다른 사람이 ID를 훔쳐쓰는 일이 많아지자 지난주 ‘PC통신에 다른 사람이 접속할 경우 삐삐로 알려주는 서비스’까지 시작할 정도로 통신 사생활 침해는 민간부문에서도 심각한 수준이다.
▼개인정보의 보호범위▼
영화 쉬리의 한 장면. 2명의 남파간첩이 PC방에서 지령을 주고받는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간첩들은 유유히 목적을 달성한 후 제갈길을 간다. 최근 국가정보원이 일망타진한 간첩단 사건의 경우 영화 속의 통신방식이 현실에서 그대로 재현됐음을 보여준다. 구속된 강철서신의 저자 김영환씨 일당이 사용한 교신방법에 PC통신이 등장한 것이다.
남북한 분단이라는 특수상황과 마약 테러 등 급증하고 있는 국제범죄를 고려할 때 수사기관에 의한 중요 범죄용의자들의 개인정보와 E메일 검열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을 경우에 발생할 수 있는 사생활의 피해. 일부 수사기관이 수사편의상 실시하는 저인망식 감청이나 조회는 너무 많은 피해자를 만들 수 있어 근절이 시급하다. 일련의 취재과정에서 수사기관의 이같은 저인망식 방법은 여러군데서 확인됐다.
▼공전하는 관련법규 개정▼
통신비밀보호법 등 관련법규의 정비가 시급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
통신수단과 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혁신적으로 발전하는데 관련 법규는 이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분명한 사생활침해인데도 법적 규제장치가 없어 처벌을 할 수 없는 경우까지 나타나고 있다.
작년 정기국회에서도 여야간에 다른 주장을 되풀이하고 결국 다음달로 다가온 정기국회에서 통신비밀 보호문제가 또다시 쟁점으로 떠오를 전망이다. 그러나 정략에 끌려 이번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급변하는 통신수단의 발전에 맞는 적절한 법 개정이 이뤄질지는 의문이다. 현실을 떠난 법은 권력의 남용을 부를 뿐이다.
휴대전화서비스업체 PC통신업체 등 개인의 통신비밀을 관리하고 있는 통신업체들의 각성도 지적되고 있다. 수사기관에서 무리한 요구를 해오더라도 일부 담당자들이 관례상 정보요청을 들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 정보를 제공하는 통신 담당자들이 대부분 고객지원센터에서 근무중이다. 고객을 돕고 상담해줘야할 고객지원센터에서의 정보 제공도 시정되어야 한다.
통신수단 사용자들의 자세 변화도 요구된다. 스스로 비밀번호를 자주 바꾸고 불필요한 E메일을 삭제하는 보안의 지혜도 요구되지만 불순세력의 감청에 대비한 기밀사항의 보안유지도 사용자들의 몫이다.
〈이 훈·김종래기자〉jongra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