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담]北美 핵외교사 정리 '미국은…' /서동만-구갑우씨

  • 입력 1999년 9월 17일 18시 15분


12일 독일 베를린에서 날아든 북한과 미국의 미사일 협상 타결 소식. 이어 15일 발표된 북한―미국 국교정상화를 목표로 한 페리 미 대북정책조정관의 의회 권고안.

마침내 한반도 냉전종식의 가닥이 잡힌 것인가. 클린턴정부는 어떻게 북한과의 지루한 밀고당기기를 일단락하는 쪽으로 선회했을까.

이번주 번역 출간된 ‘미국은 협력하려 하지 않았다’는 북미협상의 감춰진 밑그림을 읽게 하는 시의적절한 참고서.

정치학자 서동만교수(외교안보연구원)와 역자 구갑우박사(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가 이 책의 시사점을 짚어보았다.

▼방대한 실증자료 담아▼

▽서동만〓책을 보고 우선 놀라웠던 것은 그 방대한 실증자료였습니다. 서면자료는 물론이고 북핵문제와 관련된 미국 북한 남한의 주요 정책결정자들을 거의 모두 인터뷰했더군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북미관계를 분석하는 저자의 시각입니다. 저자는 북미간에 핵협상이 계속 교착됐던 이유를 미국측 정책집단의 그릇된 대북인식에서 찾고 있습니다.

▽구갑우〓저자는 미국 행정부내에 북한전문가가 아예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이야기하죠. 워싱턴 대북정책 담당자들의 인식이 ‘북한은 악당국가이고 그들의 제안은 모두 속임수이며 협상한다는 것은 그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일 뿐’이라는 수준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같은 저자의 주장은 얼핏 친북적인 것으로 오해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저자의 고민은 ‘북한과의 관계에서 무엇이 더 미국에 이로운 선택인가’하는 것으로 귀결됩니다. 그리고 그의 결론은 대결보다는 북한과의 협력이 훨씬 더 미국의 비용을 줄이는 길이라는 거죠.

▼“힘에는 힘”전략 계속돼▼

▽서〓이 책이 현시점에서 중요한 이유는 이번 베를린합의가 94년 제네바 핵합의와 결부돼 있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북한이 미국과의 관계에서 줄곧 ‘대화에는 대화로, 힘에는 힘으로’라는 장군멍군식의 전략을 취해왔다고 지적합니다.만약 미국이 북한과 직접 대화를 시작한 88년 이래 초기 3년동안 북한에 적대적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아예 핵카드를 꺼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도 여기에 동의합니다. 미사일카드가 등장한 것도 94년 제네바 핵합의에서 미국이 북한에 중유를 제공하기로 했는데 미국 의회에서 여기에 브레이크를 건 때문이죠.

‘네(미국)가 먼저 이행해라’ ‘너(북한)를 못 믿겠다’는 식의 북미간 밀고당기기는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습니다. 당장 이번 합의의 내용도 미사일 발사만 중단한 것입니다. 핵합의가 이행 안되자 미사일 카드가 나왔던 것처럼 미사일 합의가 잘 이행 안된다면 북한의 미사일수출이나 개발생산 문제가 새롭게 대두될 수 있습니다.

▽구〓바로 그 점 때문에 이번 베를린 합의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보는 견해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저자는 북미간의 이러한 협상 행태에 대해 “동일한 유형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결국 협력으로 진전될 것”이라고 낙관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상대를 배반해봤자 협력했을 때보다 얻는 것이 적기 때문에 상호이타주의로 나갈 수밖에 없다는 ‘죄수의 딜레마(Prisoners Dilemma)’를 그 틀로 내세우죠.

▽서〓정치학이론에 관한 얘기입니다만 최근 미국에서 대두되는 구성주의(Constructivism)에 관해서도 짚어야 할 것 같습니다. 국제정치의 양대이론인 현실주의와 자유주의는 모두 국제질서를 이미 ‘형성된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구성주의는 국제질서나 타국에 대한 이미지는 이미 형성된 것이 아니라 변화해 갈 수 있다고 보는 입장이지요. 저자는 그런 구성주의에 입각해 미국의 대북이미지가 바뀔 수 있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남한역할 주변적으로 소개▼

▽구〓저자가 민간외교, 즉 ‘트랙 Ⅱ’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에도 주목해야 합니다. 저자는 국제정치 역학에서 민간차원의 비공식적인 네트워크가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북미관계에서는 94년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전쟁직전의 상황에서 양 측을 다시 협상테이블로 이끌고 갔다고 평가하죠.

이것은 대단히 진보적인 입장입니다. 기존의 국제정치를 보는 시각은 국가간의 힘대결이라는 것이었고 협력이 가능하다는 주장은 소수의견에 불과했으니까요.

▽서〓하지만 이 책에 맹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미국정치의 역학관계를 통해 북미관계를 보았기 때문에 저자가 협상과정을 너무 미시적으로 본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습니다. 또 남한의 역할이 매우 주변적인 것으로 기술돼 있어 민족주의적 관점에 선 독자들이 불만을 가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부분은 국내연구자들의 숙제라고 할 수 있죠. 저자가 했던 것처럼 한국 내 정치집단의 대북정책에 관한 실증적 연구가 풍부해야 하는데…. 책을 보며 학자로서 부끄러움을 떨칠 수 없었습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미국은 협력하지 않으려 했다' 리언 시걸 지음/사회평론 펴냄▼

현재 미국 콜럼비아대 국제학부 교수인 저자는 89∼95년 뉴욕타임스 논설위원을 지내며 북핵문제에 관해 58편의 논설을 썼다. 당시 취재자료를 바탕으로 북미간 핵외교사를 정리한 책. 원제는 ‘Disarming Stranger(프린스턴대 출판부)’.저자는 북한과의 핵 외교를 ‘협상성공의 가능성이 더 많을 때에도 위협을 가하고자 해온’ 미국 외교정책의 실패 사례로서 조망한다.

구갑우 김갑식 윤여령 옮김. 사회평론. 1만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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