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의 물결 속에서 각 대학 인문학 관련 학과들은 폐과 위기에 놓이고 입학 때부터 취직을 걱정해야 하는 대학생들은 인문학 강좌들을 외면한다.
★관련학과들 존폐 기로
특히 인문학의 위기를 절감하고 있는 곳은 대학원의 인문학 관련학과. 서울대 서양사학과 대학원 박사과정은 3년째 자리가 비어 있고 석사과정도 정원을 채우지 못한다. 학부제를 시행하고 있는 대학에서 철학과나 역사학과 등에 지원자가 적은 것도 심각한 상황이다. 덕성여대의 경우 인문사회과학부 7백여명 중 철학과 지망생은 단 1명이다.
그러나 대학 밖에서는 인문학 관련 강좌들이 교양에서부터 대학원 수준까지 다양하게 개설되며 수강생들을 불러 모으고 있다.
한국민족예술인총연합의 ‘문예아카데미’, 참여연대의 ‘참여사회아카데미’, 철학문화연구소의 ‘사랑방 철학강좌’, 작가 김정환이 주도하는 ‘한국문학학교’, 서울사회과학연구소와 몇몇 소장학자들이 운영하는 ‘수유연구실’등이 대표적.
김상봉 전그리스도신학대교수, 이정우 전서강대교수, 양운덕 고려대강사 등 스타급 ‘재야 철학자’는 독자적으로 강의실을 빌려 강좌를 열기도 한다. 지난해 교수직을 버리고 거리로 나온 이정우씨는 “대학내의 인문학 강좌가 현대사회의 당면문제에 대해 알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재야학자 강좌는 '북적'
그는 또 “현재 대학에 있는 40대 후반 이상의 인문학 교수들 상당수가 ‘90년대 학문의 낙오자’이기 때문에 학생들의 요구를 충족시킬 능력도 의욕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고 비판했다.
양운덕씨는 “대학내 철학강좌가 자기 틀에만 얽매여 주변학문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문화다원화시대에는 다른 분야와의 연관성을 잃어버린 ‘조각난 사고’는 더 이상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사회변화 적극 수용해야
중앙대 강내희교수(영문학)는 “우리나라 대학처럼 보수적인 지적 풍토에서는 기존에 권위를 인정 받은 것을 전파하는 데 주력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기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문예아카데미 교장을 맡고 있는 경희대 도정일교수(영문학)는 “대학은 시장에 필요한 인력을 공급하고 시장이 요구하는 기능, 기술교육을 실시하지만 이것은 대학교육의 전부가 아니고 전부일 수 없다”면서 “부단히 새로운 의제, 개념, 지식, 이론을 생산하지 못할 때 인문학은 죽는다”며 대학과 사회가 모두 반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