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차원 새이슈로▼
▽100만명의 ‘이웃’〓“과거에 남색은 일시적 일탈이었으나 이제 동성애자는 하나의 인간형이 되었다.”
푸코가 역저 ‘성의 역사’에서 한 이 말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이제 동성애자가 일시적으로 성적 변태를 즐기는 사람이 아니라 여러 인간 유형 중 하나임을 선언하는 것이었다.
영국의 작가 오스카 와일드, 프랑스의 작가 겸 사상가 앙드레 지드, 시인 아르튀르 랭보와 폴 베를렌느, 미국의 배우 록 허드슨, 테니스 스타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 동성애자라는 사실 때문에 인간의 역사에서 이들을 폄하하지는 못한다.
일반적으로 동성애자를 성인의 4% 정도로 추산하는 방식을 적용한다면 우리나라에도 동성애자가 100만명에 이른다는 계산이다.
최근에는 사회적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동성애자임을 공개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내 안의 두 가지 성〓지그문트 프로이트가 동성애를 유아적인 퇴행현상으로 본 데 반해 칼 융은 무의식 속에 있는 여성적 성향인 ‘아니마’와 남성적 성향인 ‘아니무스’에 주목했다.
보통 남자 여자라고 하면 외면적인 성향을 나타내지만 내면에는 반대 성향의 인격요소가 있다는 주장이다. 남자에게는 아니마가, 여자에게는 아니무스가 내면에 있어서 상대에게 투영될 때 이성애를 느낀다는 것이다. 그런데 동성애자들은 자기자신을 내면의 아니마나 아니무스와 동일시함으로써 동성에게 끌린다고 설명한다. 정신분석학적 관점이다.
동성애의 원인으로는 또 게이의 뇌 시상하부 크기가 작다든가 레즈비언의 내이(內耳)가 남성의 내이 기능에 가깝다는 등의 생물학적 원인이 꼽히기도 하지만 아직 명확한 원인은 찾지 못하고 있다. 다만 동성애란 자율적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 타고 난다는 것은거의분명해진것 같다.
▽‘억압’의 상징과 평등의 문제〓푸코의 선언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동성애에 대한 ‘탄압’이 심하다. 이점에서 동성애는 이데올로기를 넘어 사회의 ‘억압’을 상징한다.
▼체제 유지위해 탄압▼
푸코는 성차별 문제를 포함하여 동성애를 사회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억압 메커니즘의 하나로 본다.
인구를 확실히 증가하게 하고 노동력을 재생산하며 사회적 관계의 양상을 유지하려는 의도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경우는 단정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려는 성적 가치관이 사유재산과 그 역사를 같이한다고 보았다.
이런 의미에서 영국의 사회학자 앤터니 기든스는 동성애의 관계에 있어 성적 취향 이외에 권력이나 차별이 개입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한다. 동성애에서 사회적 차별을 넘어서 신뢰에 기초한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갈 잠재력을 보는 셈이다.
‘개인적인 것의 철저한 민주화 가능성’이라는 차원에서 성의 문제를 중요한 절차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이다.
동성애를 ‘정상’으로 받아들이느냐는 개인 판단의 문제일 수 있다. 그러나 이미 소수 인간형으로서의 동성애자를 동료로 인정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중요한 척도가 돼 버렸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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