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 책읽기에 대한 반성과 숙고를 그는 끊임없이 요구한다. 그는 주관과 객관, 화자와 주인공, 현재와 과거의 경계를 허물어뜨리는 한편 불분명한 환상과 날 것 그대로의 상징들을 불쑥불쑥 풀어놓는다.
‘한없이 낮은 숨결’(89)이후 10년만의 새 창작집 ‘강 어귀에 섬 하나’(문학과 지성사)도 이 점에선 전혀 다르지 않다.
일곱편의 중 단편은 주인공도, 화자(話者)도 제각기인 느슨한 구조로 묶여있다. 그러나 사춘기에서 장년에 이르는 인물상을 통해 현대인의 ‘욕망’을 순차적으로 펼쳐보이면서 각 작품은 서로 유기적 관계를 맺는다.
중편 ‘순수한 불륜의 실험’에서 작가는 영화 제작현장에서 일어나는 외도를 소재로 ‘순수’와 ‘불륜’이라는 어휘의 충돌을 통해 언어자체가 가진 억압을 펼쳐보인다.
“불륜은 욕망과 사회의 근원적인 관계를 내보인다. 방치하면 무한히 팽창하는 것이 욕망이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은 욕망에 대한 금지체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작가는 언제나처럼 어렵사리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다. “분명한 말로 설명할 수 있다면 왜 작품으로 어렵게 형상화하겠는가”라는 사무엘 베케트의 발언을 내비치며.
작품의 화자(話者)는 작품속의 불륜을 행하는 인물과 이를 관찰하는 두 사람이다. 둘의 대화에 따라, 관찰하는 행위 자체마저도 다시 관찰의 대상으로 재구성된다.
‘마지막 연애의 상상’에서 작가는 39세라는 현재시점에서 ‘새마을 교육’에 동원됐던 29세의 과거시점과 양로원을 상정한 69세의 미래시점을 오가며 허구와 실제의 경계선을 지워간다. 이 작품에서 ‘과거는 환상에 불과하며, 미래야말로 분명히 닥칠 실제’일 수도 있다.
그가 이런 해체를 통해 도달하려는 지점은 무엇인가. ‘하나의 틀 속에 세상을 가두는 것을 문제삼고, 이질적인 것들을 한 공간속에 데리고 살려한다’(문학평론가 정과리)는 분석에 그는 동의한다.
“내가 허구와 실제, 과거와 현재의 이분법을 지우는 것은 개념을 가르는 데서 언어의 권력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세상 자체가 혼돈이고, 명백하게 가를 수 있는 것도 사실은 없지 않은가.”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