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사실주의에서 벗어나려 한 몸부림의 산물입니다. 세상 사람이 저마다의 다양한 코드로 상대를 이해하는데, 여전히 사실주의의 틀을 붙들고 있다면 시대에 뒤떨어지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지요.”
그래서일까. 신작에선 기지촌여성의 질곡을 그린 ‘고삐’와 윤이상의 일대기인 ‘나비의 꿈’ 등 에서 보여줬던 치열한 고발의식과 선명한 문제제기는 찾아볼 수 없다.대신 그의 새로운 세계를 수놓고 있는 것은 주인공들의 내면적인 상처다. 그 상처들은, 가까운 만큼 서로 긁히고 피흘리기 쉬운 혈육과의 관계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볼록거울’에서 어릴 적 성폭행의 기억을 가진 딸은 그 상처를 따뜻하게 어루만지지 못하는 어머니 때문에 마음의 ‘딱정이’를 떼지 못하지만, 결국 화해의 손길을 내민다.
‘딴나라 여인’은 한편으로는 소재의 새로운 지평을 상징하는 은유이기도 하다. 여덟 편의 수록 작품 중 다섯 편이 이민자 등을 등장시켜 해외 한국인 문제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사실주의를 벗어나 어디로 가느냐구요. 기법에 의도를 담을 생각은 없어요. 단지 우리가 잃어가는 삶의 진정성을 찾는 작업을 계속할 겁니다.”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