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맞벌이부부 지식투합 '책 함께쓰기' 바람

  • 입력 1999년 10월 3일 19시 08분


부부 역사학자인 이재광(38·영산대 겸임교수) 김진희씨(32·한림대강사)는 최근 신간 ‘영화로 쓰는 세계경제사’와 ‘영화로 쓰는 20세기 세계경제사’를 부부 공저로 출간했다.

▼공통-관심분야 글로 엮어

“남편이 함께 책을 쓰자고 제의했을 때 망설였어요. 박사논문을 쓰는 중이었거든요.”(김씨)

“미국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내에게 ‘틈틈이 자료를 보내주면 책은 내가 다 쓰겠다’고 꼬드겼지요. 막상 집필에 들어가자 미국사에 정통한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고 결국 아내의 논문제출은 반학기나 늦추어졌어요.”(이씨)

이들 부부 역사학자가 영화로 본 세계사를 쓰게 된 것은 영화가 이들의 공통관심사였기 때문. 김씨는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역사를 살아있는 것으로 느끼게 하는 미국에서의 역사강의에 대해 자주 얘기했고, 영화광인 이씨는 국내에서 이를 ‘실천’하자고 제안한 것. 부부는 토론을 통해 견해의 차이를 좁히곤 했지만 집필중 싸움도 잦았다.

▼의견차이로 티격태격도

“아내는 캐빈 코스트너 주연의 ‘늑대와의 춤을’이 백인중심의 역사해석에서 벗어난 영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역시 백인우월주의가 드러나요. 백인인 코스트너는 여전히 영웅으로 인디언에게 총쏘는 법을 가르치고….”(이씨)

“다른 영화들이 어떻게 인디언을 묘사했나 봐요. 잔인하고 유머도 모르는 종족이라며….”(김씨)

“그게 아니라니까”라며 아내의 말을 가로막는 이씨에게 부부가 함께 책을 쓰는 것이 좋으냐고 묻자 “노”라고 대답. 그러나 “다시는 함께 책을 내지 않을 것이냐”고 다짐하듯 묻자 “서로 지식을 공유하고 보완한다는 면에서 좋다. 다음 책은…”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부부 공저의 시대’가 열리고 있다. 산림학자인 차윤정 전승훈씨(신갈나무 투쟁기)와 과학자인 오조영란 홍성욱씨(남성의 과학을 넘어서)도 ‘전문분야’를 책으로 묶었다.

▼동반자 의식 더욱 굳어져

부부가 공저를 내는데는 ‘남자는 하늘, 여자는…’식의 가부장적 이데올로기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것은 물론 두 사람의 지적 수준이 일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명진출판 안소연사장은 “같은 분야에 종사하는 전문가 부부가 늘어나면서 공동작업을 통해 동반자의식을 확고히 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기성세대와 달리 젊은층에서는 부부의 ‘공적 작업’을 당당하게 노출시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같은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공통의 관심사를 키워 나가기 위해, 혹은 함께 지적 욕구의 분출구를 찾기 위해 공저를 선택하는 부부도 적지 않다.

경제학자인 남편과 함께 ‘나는 가정을 경영한다’를 쓴 방송작가 추영씨(35)는 “경제선생과 글선생이 서로 지식을 보완해가며 책을 한쪽씩 채웠다”며 “오랜시간 얘기하면서 서로의 존재와 역할에 대해 깊은 이해와 사랑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김진경기자〉kjk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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