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타워의 문화사회학]젊음-패션 '접속존' 우뚝

  • 입력 1999년 10월 3일 19시 08분


올해 2월 개장. 지하2층 지상7층(쇼핑외 시설제외), 입주점포 2000여개, 하루 이용객 10만명. 오전10시에 문을 열어 새벽5시 폐점까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 도매상권이던 서울 동대문에 ‘밀리오레’와 더불어 10,20대의 시선을 새롭게 끌어모은 거대 패션쇼핑몰 두산타워. 그러나 백화점 뺨치는 첨단시설을 갖춘 이곳에선 그러나 이런 안내방송이 수시로 흘러나온다. “호피무늬 쫄바지 네벌을 구입해 입고 가신 남학생 네 분, 매장에 휴대전화 놓고 가셨으니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첨단과 ‘시장스타일’의 공존. 아줌마부터 ‘중딩(중학생)’까지, 옷값깎는 실랑이 자체를 즐기려 서울 강남에서 건너온 주부들부터 새벽녘 ‘업소’를 파한 젊은 여성들까지 뒤섞인 두산타워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다?

가장 최근에 생겨‘옷을 주제로 한 놀이동산’으로 자리매김한 두산타워의 문화사회학.

▼뱀처럼 움직이다

‘ㄴ자형’매장. 1평 남짓한 가게들이 벌집처럼 붙어있다. 백화점에서와는 달리 쇼핑객들은 복도 양편에 늘어선 매장을 지그재그로 훑어보며 걷지 않는다. 한쪽에만 시선을 고정시킨채 전진하는 것. 결과적으로 한개 복도의 매장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선 복도를 갔다가 또 되돌아와야 하는 등 백화점에서보다 두배로 발품을 파는 ‘비경제적인’ 동선(動線)을 보이고 있었다. 뱀처럼 구불구불한 동선이 만들어지는 것.

신구대 경영학과(마케팅) 김영국교수의 분석. “백화점과 달리 두산타워는 바로 옆가게의 물건끼리도 아이템이나 색상이나 진열방식이 천차만별이다. 정장 옆에는 찢어진 청바지, 다음엔 잠옷…. 연속되는 변화가 긴장을 자아내 시각을 오히려 고정시킨다.” 눈길을 지그재그로 옮기는 사이 시각적 휴지기(pause)가 생기는 백화점보다 더 매장에 몰입되므로 충동구매가 발생하기 쉽다는 것.

업소당 눈길이 머무는 시각은 1초 남짓. 따라서 일단 눈에 띄는 점포의 물건이 선택되고, 다른 매장은 보유상품에 관계없이 무시되는 극단적 구매행태(상인들은 이를 ‘OX형 구매’라고 불렀다)가 나타난다는 게 삼성마케팅연구소 강태윤과장(마케팅박사)과 박민희대리의 설명.

▼잉크처럼 퍼지다

두산타워를 찾는 사람들 중 다수는 교복을 입은 중고생. 학교가 끝나는 오후 4시와 과외학원이 끝나는 밤 8시 무렵 몰려든다.

일단 공통관심사인 5층 액세서리 매장에 운집. 이후 아래층으로 훑어 내려간다. 이 ‘내리흐름’은 최하층인 지하2층 외국유명브랜드 매장 직전에서 일시 정지. 그러나 밤8시를 기점으로 다시 봇물처럼 밀려온다. 외국잡화 취급점 K씨의 설명. “값을 묻는 여중고생들은 삼삼오오 짝을 짓고 있다. ‘가짜가 아니다. 그래서 비싸다’고 말해도 얼마냐고 또 묻는다. 결국 사는 학생은 아무도 없지만.”

문화비평가 김성기씨(현대사상 주간)는 “수입품 매장은 중고생들에겐 일종의 성역”이라고 말한다. 선망과 시기심이 농축돼 있다가 자기편 숫자가 늘어나면 일순간 감정이 발동, ‘못먹는 감 찔러나 보기’심리를 분출시키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두산타워 층별로 학생들이 얼마나 무리지어 다니는가를 측정하기 위해 지난달 28일 오후7∼8시 각 층별로 교복입은 학생을 조사했다. 5층 액세서리 매장에선 평균 2.1명(32명 대상)이, 1층 숙녀복 매장에선 2.4명(35명 대상)이, 지하2층 외제브랜드 매장에선 3.2명(29명 대상)이 무리를 지어 몰려다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역’일수록 ‘단결’하는 모습이었다.

6층 신발매장에서 시작, 한층씩 내려오며 쇼핑하는 것이 일반적. 상인들은 하행, 상행 에스컬레이터 부근 중 어느 쪽에 자리잡느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에스컬레이터가 내려오는 쪽에 위치한 상점들은 더 오래 손님의 시각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 공평을 기하기 위해 두산타워측은 격월로 에스컬레이터를 반대방향으로 운행한다.

▼소비와 유희 사이

두산타워 앞에 마련된 무대엔 일주일에 4,5회 무명댄스팀의 공연이 오후 7시부터 열린다. 매일 1000여명의 관객이 몰려온다. 9할이 중고생이다. 이들은 학원을 마치고 대중교통편으로 이곳에 집결. 가두판매점에서 핫도그를 저녁‘끼니’삼아 사먹음으로써 용돈과 시간을 아끼며 무대가 잘보이는 자리를 선점. 중고생들은 자신의 마음을 내맡길 대상을 찾아 목말라하고 있었다. PCS를 판촉하는 특정 도우미에 매료돼 매일 저녁 1시간씩 죽치고 앉아있는 열성파도 있을 만큼.

두산타워 인근 한 가판매점에서 하루 저녁 팔아치우는 핫도그는 200여개. 두산타워 앞 광장에서 ‘눈맞춤’에 성공한 남녀‘교복들’은 인근 신당동 떡볶이집으로 자리를 옮겨 진지한 만남의 시간을 갖는다.

댄스팀 ‘스마일’을 보기위해 일주일에 두세번 이곳을 찾는다는 여중생 C양(14)은 “머리에 물을 들이고도 편안하게 옷을 살 곳은 백화점도 시장도 아닌, 여기 ‘서편제’뿐”이라고 말했다. 그들은 흥인시장 등 동쪽 재래상가를 ‘동편제’, 반대편에 있는 두산타워 밀리오레 등을 ‘서편제’로 불렀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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