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세계기호학대회 김성도교수 참관기]

  • 입력 1999년 10월 12일 18시 42분


제7차 세계기호학대회가 국제기호학회 주관으로 최근 독일 드레스덴에서 열렸다. 이번 학회는 50여개국 1000여명의 학자가 참가한 기호학자들의 명실상부한 ‘지적(知的) 향연’이었다.

국제기호학회는 69년 파리에서 당대 인문학의 대가였던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롤랑 바르트, 움베르토 에코 등에 의해 창립됐으며 공식학술지 ‘세미오티카’를 발간해 왔다.기호정보과학회 공간기호학회 법률기호학회 이미지기호학회 등의 산하기구를 두고 있으며 회원 수는 6000명에 이른다.

학회 창립 30주년을 맞아 열린 이번 대회의 주제는 ‘복잡체계에서의 기호과정’. 단선적 논리로 설명되지 않고 감성적 세계까지를 포괄하는 복잡계 현상에 대한 다양한 기호학적 시각들이 선보였다.

문학 성(性) 음악 도시계획 시각이미지 등 기존의 연구영역 외에도 마케팅과 교육, 몸의 현상학적 체험 등 다양한 영역에 걸친 논문 800여편이 소분과들을 통해 발표됐다. 디지털화와 사이버세계에 대한 기호학적 해명도 시도됐다.

이탈리아 볼로냐대 움베르토 에코 교수는 개막연설에서 ‘새 밀레니엄 시대의 기호학’을 주제로 기호학사의 주요 흐름을 개괄한 후 기호를 매개로 의사소통을 했다는 점에서 20세기를 커뮤니케이션의 시대로 규정했다.

그는 또 기호학은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했다는 평가를 내렸다. 아울러 21세기를 지배할 글로벌라이제이션(Globalization)과 첨단테크놀러지 현상에도 기호학자들은 적극 개입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20세기의 기호학이 기호의 구조와 메커니즘에 대한 연구였다면 현실과 가상세계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질 새 세기에는 기호를 어떻게 정상적으로 건강하게 사용할 것인가를 가르쳐주어야 한다며 기호학의 윤리적 정치적 강령을 만들자고 제안했다.

스페인 팜플로나대 자이미 누비올라교수는 찰스 샌더스 퍼스의 복잡계 개념이 단순화를 통해 원인을 분석해 들어가는 식의 환원주의의 빈곤성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고 평가했다. 퍼스는 동물 식물 인간은 물론 정신 제도사 언어사 사상사 등의 기저에는 성장과 복잡성을 유도하는 일정한 동작주체가 존재한다고 파악했다.

특히 그의 보편적 범주론과 한짝을 이루는 ‘연속성 사상’은 인간정신과 우주로까지 확장될 수 있으며 유물론의 한계를 극복하고 지향성 목적성 느낌 등의 복잡한 정신적 현상들을 설명하는 데 하나의 전범을 제시하고 있다.

누비올라교수는 이런 점에서 복잡계 사상을 체계화한 일리야 프리고진을 퍼스의 시간사상에서 영감을 얻어 물리학법칙의 다원주의를 이해한 선구자로 보았다.

한편 루마니아 부카레스트대의 수학자겸 기호학자인 솔로몬 마르쿠스 명예교수는 카오스를 기호학의 새로운 도전의 대상으로 꼽았다.

동아시아 분과에서는 불교의 기호학적 양상을 비롯해 일본적 에토스에 대한 기호학적 설명이 시도됐다.

한편 한국기호학회는 이번에 회원학회로 가입됐으며 필자와 이화여대 김치수 교수가 집행위원으로 선출됐다.

〈고려대·언어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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