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삶과 예술]비디오테이프 '글로벌 그루브'

  • 입력 1999년 10월 13일 19시 34분


《관객들이 백남준의 비디오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전자이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매우 곤란하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복잡한 이미지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교차하며 관객은 내용보다 이미지의 홀림에 넋을 잃고 그저 바라만 보게 된다》

한국의 사물놀이에 맞춰 전통 춤을 추는 무용수들, 샬롯 무어만과 백남준이 함께 갖가지 퍼포먼스를 벌이는 장면, 무어만이 TV첼로를 연주하는 모습, 존 케이지와 앨런 긴즈버그의 대화내용, 일본의 펩시콜라 광고, 워터게이트 사건에 휘말려 사임한 리처드 닉슨 전 미국대통령의 뒤틀린 얼굴모습, 피아노가 불타는 장면, 미국의 록에 맞춰 춤을 추는 무희들의 모습 등은 백남준의 비디오작품에 단골로 등장하는 이미지들이다.

이러한 소재들은 모두가 백남준 비디오예술의 기원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인 1973년에 제작된 비디오테이프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지구의 선)에 나오는 시각적 재료들이다.

★ 전자 이미지 합성

그런데 관객들이 백남준의 비디오작품에 빈번하게 등장하는 이러한 전자이미지를 제대로 이해하기란 매우 곤란하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복잡한 이미지들은 매우 빠른 속도로 교차하며 관객은 내용보다 이미지의 홀림에 넋을 잃고 그저 바라만 보게 된다. 어느 이론가는 이를 일컬어 하이테크가 부리는 이미지의 농간이라고까지 꼬집은 적도 있다.

텔레비전 프로그램에 익숙해져 있는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러한 초고속의 이미지 콜라쥬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그냥 지나치게 된다. 표현은 안 하지만 “비디오예술이라는 것은 원래 저렇게 생겨먹은 것인가 보다, 백남준이란 사람은 원래 이상한 예술을 하는 사람이니까” 등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 채 관객은 감상의 권리를 아예 포기해버리는 일이 다반사이다.

비디오예술이 상업텔레비전과의 차별성을 획득하기 위하여 초창기부터 시도해온 책략을 기억하는 독자라면 백남준의 작품에 나타난 이미지들이 의미하는 바를 어느 정도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상업텔레비전이 시청자를 흡수하기 위하여 철저하게 지키려 하는 방송의 패턴이나 속도, 내용과는 달리 그보다 더 빠르거나 혹은 느리게, 아니면 상업텔레비전이 다루는 재미 중심의 소재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이른바 비디오예술 철학 가운데 하나였던 것이다.

★ 비디오테이프의 원조

사실 백남준의 예술세계에 어느 정도 익숙해진 우리는 그 동안 비디오예술이라는 것이 그가 주로 탐닉하는 비디오조각이나 설치, 또는 인공위성 프로젝트 등 물리적 부피를 갖는 하드웨어에 집착하여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백남준의 입체작품에는 비디오테이프가 함께 방영될 때만이 작품이 완성되기 때문에 하드웨어의 부피만을 작품으로 인식하는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글로벌 그루브’는 백남준의 작품 곳곳에 전천후로 사용되는 이른바 비디오테이프의 원조 격이다. 가령 국내 관객이 기억할만한 작품가운데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나 ‘바이 바이 키플링’ 등 인공위성 프로그램,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소장된 ‘다다익선’, 그리고 백남준의 200여 점의 오브제 작품의 모니터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거의 ‘글로벌 그루브’로부터 재편집된 작품들이다.

★ 관객 내용이해 어려워

30분 길이로 구성된 이 작품의 첫 머리에는 미국의 유명한 방송프로듀서인 러셀 콘너의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등장한다.

“세계의 모든 텔레비전을 집안에서 볼 수 있을 때가 되면 여러분은 드디어 세상을 골고루 바라볼 수 있을 것이다. 이 때쯤 되면 ‘TV가이드’는 맨해튼의 전화번호부보다 더 두꺼워질 것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이 이야기는 완전히 유토피아적인 예언이었지만 오늘날 케이블 텔레비전이나 인공위성 방송이 실현됨에 따라 이미 상당부분은 현실화되었다.

‘글로벌 그루브’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이미지들은 엄청난 양에 비해 그 내용간의 구체적 연결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관객이 문맥을 파악하는데는 장애를 느끼게 된다. 가령 펩시콜라 광고나 무용수들의 춤, 케이지와 긴즈버그의 대화 등은 서로 관계가 없는 이미지의 반복적인 나열일 뿐이다.

게다가 이 장면들은 모두 합성기에 의해 가공되어 뒤틀리거나 조작되어 초현실적인 이미지로 표현된다.

‘글로벌 그루브가’ 백남준 비디오예술에서 또 하나의 기원적인 작품이 된 것은 몇 가지 중요한 역사적 사실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이 작품은 백남준이 아베 슈야와 함께 1971년 개발한 비디오 신시사이저를 가장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제작한 완성품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여기에 등장하는 이미지들은 모두가 신시사이저를 통해 합성되어 사실적 전달보다는 매우 회화적인 이미지가공이 이루어졌다.

★ 요란한 주장 사라져

둘째는 60년대 말에서 70년대 초 사이, 백남준을 포함하여 정치, 사회적 이슈를 다룬 비디오집단들의 테이프 작품이 텔레비전 지배구조에 정면 도전하는 다큐멘터리 비디오에 중점을 두었기 때문에 백남준은 예술가들이 소홀히 하였던 비디오기술의 예술적 이미지 창조에 주력한 작품을 만들게 되었다. 당시 ‘글로벌 그루브’를 평가였던 미국의 비평가 캘빈 톰킨즈의 언급은 이를 잘 뒷받침하고 있다.

“이 작품은 백남준의 과격했던 종전의 태도와는 달리 어떤 선언도, 주장도, 야단법석도 없이 비디오를 예술형식으로 승화시키려던 생각에 충실해 있다”고 기술하고 있다.

이 작품이 갖는 역사적인 가치에도 불구하고 ‘글로벌 그루브’는 역시 하이테크의 조합을 이용한 이미지의 천국을 대변한 작품이다. 사진의 단순한 복사기능을 비판한 20세기 예술가들이 사진의 뻣뻣한 느낌을 예술적으로 묘사할 방법을 발전시켰던 것처럼 백남준도 비디오의 다큐멘터리적인 속성을 정보 전달을 내세운 지구촌의 언어로 개발시켰으며 그 제목도 ‘글로벌’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다.

이용우<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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