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가는 곳을 말하지 말자.
너에게는 나를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그걸 노래부를 힘만을
눈이 왔다, 열한시
평평 눈이 왔다, 열한시
창밖에는 상록수들 눈에 덮이고
무엇보다도 희고 아름다운 밤
거기에 내 검은 머리를 들이밀리
눈이 왔다, 열두시
눈이 왔다, 모든 소리들 입다물었다, 열두시.
너의 일생에 이처럼 고요한 헤어짐이 있었나 보라
자물쇠 소리를 내지 말아라
열어두자 이 고요 속에 우리의 헤어짐을.
한시
어디 돌이킬 수 없는 길 가는 청춘을 낭비할 만큼 부유한 자 있으리요
어디 이 청춘의 한 모퉁이를 종종걸음칠 만큼 가난한 자 있으리요
조용하다 이 모든 것은.
두시 두시
말해보라 무엇인가 무엇인가 되고 싶은 너를.
밤새 오는 눈, 그것을 맞는 길
그리고 등을 잡고 섰는 나
말해보라 무엇인가 새로 되고 싶은 너를.
이 헤어짐이 우리를 저 다른 바깥
저 단단한 떠남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단단함, 마음 끊어 끌어낸…
너에게는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노래부를 힘만을
―시집 ‘황동규 시전집’(문학과 지성사)에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언제쯤 이렇게 될 수 있을까. 얼마나 더 마음을 수그리고 수그려야 이별 앞에서 “너에게는 나를 떠나버릴 힘만을, 나에게는 그걸 노래 부를 힘만을” 기원할 수 있을까. 열한시…열두시…한시…두시…밤의 시간이 흐를수록 고요와 함께 들여다봐지는 심연이여. 그러나 “이 헤어짐이 우리를 저 다른 바깥 저 단단한 떠남으로 만들지 않겠는가”.
신경숙(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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