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文化(문화)

  • 입력 1999년 10월 20일 10시 59분


10월은 文化의 달, 여기에다 20일은 文化의 날이다. 그래서 각종 굵직한 文化行事가 이 달에 집중되어 있다. 그렇지 않아도 五穀(오곡)이 풍성하여 인심도 후할 때고 겸하여 하늘 또한 푸르고 높아 가만히 있어도 文化생각이 나게 되어 있기도 하다. 이제 文化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는 것은 쓸데없는 잔소리로 들리게 되었다.

현재 우리말 속의 한자말을 보면 일본식 표현이 무척 많다는 사실에 놀란다. 中國도 이 점에서는 예외가 아니다. 한자의 종주국이 역수입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좀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두 나라 모두 일본식 한자말을 피하고는 의미전달이 불가능할 정도다.

‘文化’라는 말이 좋은 예다. 본디 文治敎化(문치교화)의 준말로 왕이 文德으로 백성을 다스리면서 啓導(계도)하는 것을 뜻했다. 西漢(서한·BC 202∼AD 8)시대부터 통용되던 말이었으니 지금부터 2000년이 훨씬 넘는다. 文化의 반대가 武斷(무단)이다. 鐵拳(철권), 강압정치인 것이다. 따라서 엄밀히 말하면 文化란 일종의 통치 방법으로 政治용어였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이 현대적인 의미로 사용되게 된 것은 일본 탓이다. 일찍이 19세기 후반 메이지(明治) 維新(유신)을 통해 서양학문을 대량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번역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한자 단어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서양학문을 앞장서서 수용했던 계층이 漢學者(한학자), 文人들이었던 만큼 그들이 한자 용어를 사용했던 것은 당연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서양의 학문이 워낙 異質的인 것이어서 이를 번역할 만한 적당한 단어가 많지 않았다.

그 결과 대강 비슷하거나 아니면 엉뚱한 단어를 窮餘之策(궁여지책)으로 끌어다 맞추게 되었는데 자연히 기존의 한자 단어와 의미가 부합되지 않는 경우도 많이 있게 되었다. 文化가 바로 그런 경우다. 영어 ‘culture’를 번역할 때 적당한 용어가 없자 그냥 갖다 쓰고 본 것이 그렇게 되었다. 갓 쓰고 양복입은 꼴이 된 셈이다. 사실 ‘經濟’도 본디는 정치용어였음을 생각할 때 용어의 둔갑은 종잡을 수가 없는 것 같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chung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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