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사람]'학교종이 땡땡땡'펴낸 고교교사 김혜련

  • 입력 1999년 10월 22일 19시 15분


올해로 20년째 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국어를 가르치는 김혜련교사(42). 3년전부터 교실에 들어서기가 두려워졌다. 아이들이 벽처럼 다가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열심히 가르쳐도 수업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자괴감으로 밤잠을 못이루며 울기도 했다. 가까운 동료교사들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나서야 ‘나홀로 50분’이 그만의 고민이 아님을 알게 됐다.

“수업시간에 떠들어서 쳐다보면 ‘흥 네까짓 게 보면 어쩔래?’하는 표정으로 아랑곳없이 계속 떠들죠. 어떨 때는 선생이라는 것을 잊고 다 때려부수고 싶어져요.”

아이들도 교사도 다 ‘악이 받쳐’ 대치하고 있는 교실. 김교사가 최근 낸 책 ‘학교종이 땡땡땡’(미래 M&B)은 바로 그 교실의 ‘오늘’을 그린 것이다. 문제를 풀려면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을 썼다.

시험에 관계없는 과목을 가르친다고 담당교사 앞에서 교과서를 찢는 반항, ‘얕보이면 죽음’이라는 이유로 고민이 있어도 친구들과 대화를 나누지 못하는 단절, 가족과 학교대신 연예인들에 열광함으로써 마음붙일 곳을 찾는 소외, 조금이라도 튀는 아이에겐 왕따를 서슴지 않는 배타성….

“왜 이렇게 됐냐고요. ‘공부’라는 단 하나의 잣대를 휘둘러서 아이들에게 체계적으로 열등감을 키워왔기 때문이지요. 연극 잘하는 아이, 만화 잘 그리는 아이들에게 ‘공부 못하니까 저런 거 한다’고 빈정거리는 교육환경에서 어떻게 아이들이 자긍심을 갖고 남을 이해할 줄 아는 행복한 인간으로 커나가겠어요?”

체벌금지 대입무시험 전인교육…. 책상 위에서 만들어진 제도들이 벼랑끝까지 몰려간 교사와 학생들을 구해낼 수 있을까. 김교사는 “내가 아이들 이름이라도 다 기억할 수 있도록 학급 정원만이라도 줄었으면…”이라고 소망했다.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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