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 '프랑스 혁명의 가족 로망스' / 린 헌트 지음/ 새물결 /310쪽, 1만5000원.

이 책의 결론부터 보자.

‘1789년 프랑스혁명은 남성끼리의 새 판 짜기였다. 남성 중심의 혁명, 여성을 정치에서 배제한 미완의 혁명, 절반의 성공. 이것이 프랑스 혁명에 감춰진 보수성이다.’

충격적이면서도 신선한 시각으로 프랑스 혁명의 이면을 파헤친 책. 저자는 신(新)역사학의 선두주자인 미국의 여성 역사학자 린 헌트.

▼ 일상문화통해 혁명의 이면 조명

저자는 정치가 아닌 일상문화 중심으로 프랑스혁명에 접근한다. 정치권력은 일상문화에서의 다양한 상징적 표현을 통해 작동한다는 생각에서다. 그리고 그 상징적 표현을 집단 무의식이라고 설명한다. 그 무의식을 설명함에 있어 저자가 차용한 매개 개념은 ‘가족 로망스’.

왜 가족 로망스인가. 그것은 어떻게 프랑스혁명과 연결되는가. 가족 로망스는 오스트리아의 정신분석학자 지크문트 프로이트가 사용했던 개념. 자신의 부모를 왕 왕비와 같이 높은 지위의 사람으로 대체함으로써, 즉 현실의 부모를 상상의 부모로 대체함으로써 자신의 부모에게 복수하고 동시에 자신의 지위까지 향상시키려는 심리를 뜻한다. 그것은 가부장제에 대한 도전이자 ‘아버지 죽이기’인 셈이다.

저자에게 있어 ‘아버지 죽이기’는 프랑스혁명을 이해하는 핵심 키워드다. 당시 프랑스의 절대주의 정치체제는 가부장적 권위에 의존했다. 따라서 절대주의를 무너뜨리기 위한 혁명은 가부장제의 붕괴, 즉 아버지 죽이기를 통해 실현된다. 절대군주 루이16세의 처형도 아버지 죽이기였다.

▼ 왕권타도는 '아버지 죽이기' 해당

저자의 분석은 참신한 상상력, 문화에 대한 해박한 지식으로 가득하다. 소설 미술 신문 포르노 멜로드라마 등 당시 프랑스인들의 일상문화를 샅샅이 뒤져가면서 자신의 논지를 전개한다.

저자가 파악한 18세기 프랑스소설의 주된 경향의 하나는 반(反)가부장제. 위기에 처한 가정, 아버지에 반항하는 아들…. 이런 내용은 가부장제와 절대군주제에 대한 저항의 표현이었다.

문제는 루이16세(아버지)의 죽음 이후에 발생한다. 프로이트에 따르면 아버지가 사라진 빈자리는 남자형제들이 채우게 된다. 프랑스혁명의 과정도 그렇다. 혁명의 3대 모토인 자유 평등 박애 중 박애의 원어는 형제애였다.

하지만 그 형제애는 말 그대로 남자들만의 것이었다. 여성의 정치 참여는 배제되었다. 저자는 따라서 박애라는 용어 자체도 진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본다. 혁명 이후의 소설에서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여성의 모습을 발견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생물학적으로 열등하다는 의학적 견해도 그무렵 나타난 것이라고 밝혀낸다.

▼ '박애'의 원어는 남성간 '형제애'

결국, 부권(父權)이 붕괴된 이후에도 남성의 정치적 우월감은 정치영역에서 일상문화 영역으로 침투되어 교묘히 은폐되어 왔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각별한 매력은 일상문화를 통해 혁명의 정치를 들여다 보았다는 점과 문화사 중심의 역사연구인 이른바 신(新)역사학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역사를 바라보는 풍요롭고 신선한 시각.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을 신역사학의 기념비적인 저서로 평가한다. 조한욱 한국교원대교수 옮김.

〈이광표기자〉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