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보스턴에서]이영준/미국에도 '마루타'가…

  • 입력 1999년 10월 29일 18시 29분


▼'플루토늄 파일' 아일린 월섬 지음/다이얼프레스 펴냄▼

1945년 일본 군부로 하여금 항복을 결심하게 만들고 미국이 세계의 패자임을 알린 공포의 핵투하작전 ‘맨해턴 프로젝트’. 그 기획이 20세기 최대의 악몽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시에는 국가 혹은 세계평화를 위한다는 거창한 명분 아래, 아니면 과학적 탐구라는 미명 아래 많은 학자들이 여기에 복무했다.

이 책의 저자는 10년간 집념을 품고 그 ‘인간의 얼굴을 한 야만’의 실체를 추적했다. 암호덩어리인 서류의 숲을 헤치고 관련자 수백명을 추적 인터뷰한 것이다.

핵폭탄이 터질 때 섬광을 본 사람은 눈에 어떤 영향을 받을까. 사람들에게 소량의 방사능을 장기적으로 투여하면 어떤 효과가 나타날까. 암환자들에게 다각도의 방사능투여를 해보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이런 잔혹한 질문에 답을 구하고자 하는 실험을 나치 독일도 만저우(滿洲) 주둔 일본군대도 아닌 미군이 했다.

보스턴 교외의 어느 지체부자유 아동 공립학교 아이들 십수명은 매일 아침 식사로 제공되는 오트밀에 상당량의 방사능이 포함돼 있다는 걸 모르고 먹게 된다. 내시빌의 어느 임신부는 정기검진하러 들른 병원에서 의사가 제공하는 방사능 ‘칵테일’이 자신과 태아에게 유익한 것이라고 믿고 마신다.

핵폭탄 투하에 투입되는 공군요원들이 방사능을 극복할 수 있도록 연구하는 계획에는 신시내티의 어느 암환자가 제물이 됐다. 의사는 암치료의 일환이라고 말했지만 사실은 실험용으로 동원돼 수십차례나 강력한 방사능에 노출됐던 것이다.

미국정부는 이런 일들을 계속 숨겨왔고 관련 문서를 폐기했으며 관련된 관리와 과학자 의사들은 모르는 일이라고 발뺌해 왔다. 이런 인간실험에 동원돼 ‘원인 모를’ 질병으로 죽어간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의 몸에 어떤 짓이 가해졌는지 모른 채 죽어갔다. 1000명이 넘는 피실험자 중에는 죄수 병자 장애인도 있지만 대부분 건강한 사람들이었고 심지어 임신부도 많았다.

저자 아일린 월섬은 94년 맨해턴 프로젝트 추적보도로 클린턴 행정부 내에 ‘방사능 관련실험통제위원회’가 신설되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고 자신은 퓰리처상을 받았다. 이후 그녀는 기자직을 그만두고 인터뷰와 자료추적에 매달려 마침내 576쪽에 달하는이 책을 지난주 출간했다.

저자는 20세기의 일부 학자들이 ‘인간은 존엄하다’는 생각을 자주 중지했었다고 침통한 목소리로 주장한다. 일부 사람들의 주장대로 이 책은 그녀에게 두번째 퓰리처상을 가져다 줄 지도 모른다.

이영준<하버드대 대학원·전민음사 편집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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