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 프랑스의 어느 도미니크회 수도원에서 이어지는 죽음.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은 앎의 대가가 죽음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앎은 세상으로 나오기보다 불길에 휩싸여야 했다. 지식은 그렇게 위험한 것이었다. 제왕과 선택된 엘리트들만 접근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기에 지식을 쌓아두는 곳, 도서관도 제왕의 공간이었다.
서양 고대 문명의 가장 큰 줄기 헬레니즘의 본산 알렉산드리아는 알렉산더 대왕의 야심으로 세워진 도시. 그 한가운데에는 도서관이 있었다. 제왕의 비호 아래 모든 지식은 도서관에 쌓여갔다. 그러나 시저의 알렉산드리아 점령과 함께 70만권의 파피루스는 불길에 싸여 잿더미로 변하고 말았다.
제왕의 권위에 도전하는 지식,제왕의 이념과 다른 지식은 불 속에 던져졌다. 처음으로 중국을 통일한 황제에게도 지식의 세계는 위험스런 것이었다. 분서갱유(焚書坑儒). 진시황의 명령으로 책은 불태워지고 학자들은 산채로 매장되었다.
권력과 지식이 빚어내는 애증의 역사는 길고도 길다. 이 땅에서도 지식은 소중하면서도 위험한 것이었다. 책은 왕족, 귀족, 사대부의 것이었다. 그 책들은 집현전, 규장각을 비롯한 서원과 사원의 서고에 깊이 숨어 들었다.
인쇄술의 발달은 시민시대를 여는 기폭제였다. 어느덧 이 땅에도 시민의 시대가 왔다. 지식의 울타리는 무너지고 도서관도 시민의 공간이 되었다. 인터넷의 물결도 밀려들었다. 서고에 깊이 숨겨져 제왕도 쉽게 보지 못하던 책, 조선왕조실록도 이제는 CD―ROM으로 제작되었다. 오늘의 고등학생들은 조선시대의 사관들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왕조의 역사를 뒤져볼 수 있다.
그러나 건물로서의 도서관은 아직도 닫혀 있다. 국립중앙도서관 전면에는 열주(列柱)와 계단이 근엄하게 들어서 있다. 건물 현관까지 자동차를 타고 가자는 권위주의적인 관청 건물의 예를 충실히 따랐다. 더구나 휠체어를 탄 이는 혼자서 들어갈 수도 없다.
콘크리트 뼈대의 외부에는 근엄하게 돌을 붙였지만 내부는 그냥 적당히 칸막이를 쳐서 책을 쌓아둔 것이 대한민국 국립중앙도서관의 모습이다.
도서관은 사람이 책을 만나는 곳이다. 책은 보여주고 소리는 감춰야 한다. 그러나 비싼 돌을 번쩍거리게 붙여놓은 국회도서관 로비는 여기저기서 생기는 소음을 여과없이 들려준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한 책은 계단과 엘리베이터 너머에 숨겨 놓았다.
중요한 것은 화려한 로비가 아니고 가득한 지식이다. 건물에 들어서면 책이 보이고 바닥에는 흡음 성능이 좋은 카펫이 깔려있어야 한다. 그 카펫이 깔린 서고 아무데서나 주저앉아 책을 읽다가 책상에 놓고 나오면 사서들이 순서대로 책꽂이에 꽂는 것이 제대로 된 서양의 도서관 모습이다.
시민에 대한 불신은 도서관을 폐가식으로 운영하는 근거가 되어왔다. 그런 도서관은 책의 창고에 지나지 않는다. 국회 도서관에 들어서려면 우선 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책을 보려면 신청서를 작성하고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제목만 보고 대출한 책의 내용이 생각한 것과 다르면 다시 신청하고 또 30분을 기다려야 한다. 복사하려면 복사신청서를 작성해야 한다. 우리의 도서관은 그렇게 닫혀있다.
서고의 빗장은 곳곳의 소규모 공립 도서관에서부터 풀리기 시작했다.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시민을 초대하는 모습은 분명 열린 도서관의 바람직한 모습이다. 그러나 건물로서의 도서관은 당구장이 들어서 있는 옆의 상가와 다를 바 없이 싸고 쉽게 짓는다.
지식은 우리가 물려 받고 물려줄 소중한 자산이다. 그런 만큼 도서관도 꼼꼼히 지어야 한다. 새로운 시대에 맞춰 앞서 변해야 한다. 그러나 정보화시대라고 하면서도 인터넷이 연결된 도서관의 컴퓨터에는 항상 긴 줄이 늘어서는 것이 우리의 도서관이다. 노트북 컴퓨터를 연결할 단자는 어디에도 없다.
가장 권위주의적인 도서관의 모습은 대학에 있다. 건물을 통해 학문의 권위를 이야기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 도서관 안에는 학문을 탐구하는 이들이 아니고 고시합격를 통한 입신양명의 꿈을 불태우는 이들이 가득하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언론고시, 입사고시, 군사고시, 고시… 고시… 또 고시를 위해 그들은 오늘도 외우고 외워야 한다.
우리 도서관의 가장 기형적인 모습은 바로 이 시험의 산물이다. 이 땅의 도서관은 서고가 분리된 열람실 중심의 기형적 배치를 갖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열람실 안에서는 결연한 의지로 밤새 똑같은 걸 외우는 수험생만 가득하다. 도서관에 사물함까지 비치해 놓고 수험서는 놓고 들어가라고 하는 국립중앙도서관과 국회도서관의 모습은 우리의 학문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주는 서글픈 단면이다.
기원전 3세기경 그리스의 천문지리학자 에라토스테네스가 그 탁월한 상상력으로 지구의 둘레를 계산해 낸 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그러나 오늘 우리의 도서관에는 다섯 개 중 하나를 고르라는 문제를 맞히려는 젊은이들이 가득하다. 에라토스테네스가 계산한 지구 둘레는 다음 중 어느 것인가라는.
서현<건축가>hyun1029@chollian.net
▼파리국립도서관을 가보니/어디서나 책 잘보이게 기둥등 구조물 최소화▼
인쇄술은 지식의 소유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기 시작했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인쇄술은 수십만 자나 되는 한자를 다루는 것이어서 지식의 대중화라는 측면에서는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반면 이십여 자를 반복해서 쓰는 로마 알파벳의 활판인쇄술은 지식을 거리에 풀어놓았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처음 인쇄한 성서는 판매용이었다.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대중이 지식에 다가서면서 사회는 바뀌기 시작했다. 종교개혁, 정치혁명, 산업혁명은 지식이 제왕의 담장 밖으로 나서면서 가능해진 것이다.
혁명에 의해 바뀐 시대에는 제왕 대신 정부가,귀족 대신 직업 관료가 자리 잡았다. 늘어난 책의 양 덕분에 왕궁과 수도원의 방 한 칸을 쓰던 도서관은 독립된 건물로 자리잡았다. 사서라는 전문 직업도 생겨났다. 책상 위에서 책표지가 보이게 진열되던 책은 서가에 책 모서리가 보이게 저장되기 시작했다.
파리 국립도서관을 설계한 건축가에게 도서관은 책을 쌓는 창고가 아니고 지식을 나누는 시장이었다. 도서관에 들어서면 건물 가득한 책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1868년에 완공된 건물에서 책을 가리는 구조물은 최소화되었다. 시장처럼 넓고 높은 공간에 가장 얇은 기둥을 가진 건물에서는 난간들도 가장 얇은 것이 사용되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열람공간에서 건축가가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책을 읽는 열기였다.
20세기의 후반에 지식과 정보는 또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인터넷이라는 정보유통체계는 정부와 관료와 사서를 무의미하게 만들기 시작했다. 무정부가 아닌 초정부 시대가 도래했다. 새로운 시대는 지식을 가진 이가 아니고 지식의 흐름을 통제하는 이에 의해 움직이게 되었다. 도서관은 변화를 요구받는 첫 번째 건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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