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문경영인-임원직 '禁女의 벽' 높다

  • 입력 1999년 11월 3일 20시 02분


‘우리 사회에선 언제쯤 여성 전문경영인이 탄생할까.’

세계적인 기업들에서 여성최고경영자(CEO)들이 속속 탄생하고 있지만 우리 재계에서는 우먼파워가 아직 미미한 실정. 대기업에선 여성CEO를 찾아보기 힘들고 얼마 안되는 여성임원들 역시 오너의 친인척이 대부분. 여성 창업이 늘고 있긴 하지만 요식업 등 서비스업이 주종을 이룬다.

▼마케팅 우먼파워 세계추세▼

▽세계기업 여성CEO ‘훨훨’〓세계 다국적기업들은 마케팅 중심의 경영패러다임으로 전환하면서 마케팅부문에 섬세한 감각을 가진 여성CEO들을 적극 발굴하고 있다.

최근 세계 2위 컴퓨터회사인 휼렛팩커드가 칼리 피오리나를 CEO로 영입한데 이어 세계 2위의 법률회사인 베이커&매킨지가 새 회장에 프랑스 출신 여성 크리스틴 라가드를 선출했다.

휼렛팩커드는 기업컴퓨팅부문 대표도 여성임원이고 인터넷비즈니스 선두주자인 e베이사도 멕 휘트먼 회장이 이끌고 있어 향후 인터넷업계에 우먼파워바람이 강하게 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월가에서는 하이디 밀러 시티그룹 재무담당임원(C FO)이 주식투자부문에서 명성을 날리고 있으며 오길비&매더나 골드만삭스, 루슨트 테크놀러지 등에도 여성CEO나 여성임원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다.

▼100대기업중 애경 장회장뿐▼

▽국내 상장사 중 여성사장 전무〓세계적인 추세와 달리 국내 상장사 중에는 아직 여성CEO가 한명도 없다.

100대기업 중에선 애경산업(비상장) 장영신회장이 유일한 여성CEO. 장회장도 남편의 유업을 물려받은 것으로 엄밀한 의미의 창업사장이나 전문경영인은 아니다.

여성창업자가 전체의 32%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지만 대부분 영세한 소기업인데다 96%가 요식업 등 서비스업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현암수석연구원은 “한국에선 아직 여성들의 경영능력을 검증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며 “그러나 앞으로 인터넷 비즈니스 등 여성적인 감각을 필요로 하는 사업분야가 급성장하고 있어 여성경영자의 육성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여성임원 육성이 경쟁력 좌우〓국내 기업에 여성CEO가 드문 것은 그 기반이 될 수 있는 여성임원이 적기 때문.

▼오너 친인척 빼면 4명정도▼

실제로 30대그룹 중 여성임원은 10여명에 불과하고 그나마 오너의 친인척을 제외하면 삼성복지재단 유애열이사대우와 삼성서울병원 이정희이사, LG화재 장화식상무보, 기아중공업 조성옥이사 등 다섯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

여성임원을 발굴하려해도 임원으로 발탁할 수 있는 간부가 적다고들 말하지만 국내에 진출한 외국기업은 다르다. 홍콩상하이은행(HSBC)에서는 김혜근씨가 개인금융부문 대표를 맡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스벤슨코리아(김숙자)와 리바이스코리아(박영미)도 여성사장이 이끌고 있다.

또 프루덴셜생명보험에서 손병옥상무가 기획 및 인사총괄업무를 맡는 등 외국계 기업들의 여성임원들이 경영일선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

여성개발원 김영옥연구원은 “우리나라 대기업은 남성중심의 조직문화가 만연해 여성임원이 생존하기 어려운 풍토”라며 “한국 기업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사장되는 여성능력도 적극 활용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영이기자〉yes20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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