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자는 잠자는 미녀에게 입을 맞췄다. 물론 잔치가 열렸으리라. 그러나 서른, 잔치는 끝났다….
왕자의 머리가 벗겨지고, 미녀의 허리가 굵어질 때 가정과 사회의 의무가 그들의 자유를 옥죄올 것이다. 바야흐로 중년의 위기가 닥쳐오는 것이다.
미국의 정신과 의사가 세계 각국의 민담을 모아 정신분석학의 돋보기를 들이댄 책. ‘옛날 이야기란 인간의 기본적 화제에 대해 이야기하는 법이며 중년 주인공이 등장하는 이야기는 그 나이의 근본 문제에 초점을 맞추도록 되어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인류 정신의 원형질인 민담 속에는 모든 시대 모든 문화권의 중년의 위기가 들어 있고 대처법까지 제시돼 있다는 것.
16개 사례 중 하나인 러시아 민담. 전쟁에 나간 왕이 져서 야만인의 감옥에 갇힌다. 포로가 된 왕은 왕비에게 밀서를 보내 몸값을 지불하고 자기를 풀어달라고 한다. 왕비는 몸값을 내는 대신 소년으로 변장하고 피리를 불며 여행을 떠난다. 야만인의 왕은 피리소리를 듣고 감동해 소원을 묻는다. 소년으로 변장한 왕비는 ‘길동무가 되도록 죄수 하나를 방면해 달라’고 말한 뒤 왕을 데리고 간다.
이야기는 무엇을 상징하는가? 왕비는 왕의 명령에 복종하지 않음으로써 전통적인 아내의 역할을 거부한다. 젊어서 남성적인 면을 억압받았던 여인은 내면의 남성적인 부분을 발견하고, 자유로웠던 과거로 되돌아간다(변장).
한편 왕은 자기의 인생에 초조감을 느낀 나머지 삶을 바꾸어 보려고 시도(전쟁)한다. 그러나 실패를 겪고, 힘을 포기하고 수동적인 상태(포로)가 된다. 돌아오는 길에 왕은 왕비를 알아보지 못한다. 남자는 여성이 실제로 여러가지 역할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
결국 남자는 아내의 지혜에서 구원을 얻었다. 항상은 아닐지라도, 많은 경우에 중년의 현실과 상응하는 우화가 아닌가.
책은 4부로 돼 있다. 1부에는 중년이 되면서 젊음의 이상을 잃어가는 과정이, 2부에는 중년 이후 남녀의 성역할 구분이 사라져가는 모습이 제시된다.
3부에서는 죽음을 비롯해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는 체념의 과정, 4부에서는 중년에 고통을 받고 치유하면서 유머와 실리적 지혜를 얻게 되는 성숙의 단계가 그려진다.
“서른 이후의 사람들은 양어깨에 짐을 가득 싣고 가는 당나귀에 불과할 지 모른다. 그러나 바로 이때, 인간은 인생으로의 두번째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원제는 ‘옛날 중년 적에(Once Upon a Midlife)’. 309쪽 8000원.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