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 담론]김형찬/핵에너지는 '위험사회의 상징'

  • 입력 1999년 11월 8일 19시 16분


86년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한데 9월에는 일본 원자력 사상 최악의 방사능 누출사고가 발생했다. 78년 원자력발전 개시 이후 현재 14기가 가동 중인 국내 원자력 발전소들도 심심찮게 사고 소식을 전해 온다.

이럴 때면 우리의 놀란 가슴을 위로해 주는 따뜻한(?) 광고를 만나곤 한다. “우리 원자력 발전소는 안전하게 운전되고 있습니다―한국전력"

▼ 전세계 400개 가동 ▼

▽프로메테우스의 불〓프로메테우스가 인간에게 불을 전해줬을 때 노발대발한 제우스는 프로메테우스를 코카서스의 바위산 꼭대기에 매달아 두고 호기심 많은 판도라에게 ‘상자’를 들려 보내 인간에게 온갖 불행을 선물했다. 하지만 고기를 굽고 몸을 녹이는 불쏘시개 정도 전해줬다고 그렇게 화낼 일은 아니었던 것 같다. 인간들이 갖게 된 ‘원자력의 불’은 신들이 노닐던 이 지구를 통째로 날려버릴 정도가 됐으니, ‘깊은 사려’라는 뜻의 ‘프로메테우스’가 이름에 걸맞는 행동을 한 것인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51년 고속증식로의 개발로 엄청난 핵분열 에너지의 활용기술을 갖게 된 인류는 드디어 유토피아를 건설할 듯했다. 공장에는 값싼 에너지를 넉넉히 공급하고, 사막과 극지방을 옥토로 만들며, 우주식민지를 건설하고….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현재 전세계에는 400여개의 원자력 발전소가 전체 전력의 17%를 공급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전력 수요의 약 40%를 원자력 발전이 담당한다.

▽‘위험사회’와 용감한 나라〓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자연을 정복하며 물질문명을 발전시켜 왔지만, 이제 산업사회는 스스로 통제할 수 없는 위협을 생산하고 정당화한다. 독일의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이런 현대사회를 ‘위험사회’라고 지칭하고 반성적 사유를 통한 ‘성찰적 근대화’를 촉구한다.

▼ 폐기물등 재앙 아찔 ▼

통제 곤란한 핵에너지 문제는 바로 이 위험사회의 ‘위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백년도 못 사는 인간들은 수 백년 내지 수 만년이나 걸리는 핵폐기물 처리를 안전하게 하겠다고 장담하지만 지진이나 전쟁, Y2K 문제 등 예상되는 위험만 생각해도 아찔하다.백년도 못 사는 인간이 세상을 다안다며 설치지 말라고 일찌기 장자(莊子)가 가르치지 않았던가.

다행스럽게도 유럽연합 15개 회원국 중 프랑스를 제외한 14개국이 원전을 폐쇄하거나 신규건설을 중단했고, 미국은 70년대부터 추가 건설을 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 중국은 지금도 열심히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 욕망의 절제 배울때 ▼

▽2인자가 길(吉)하다〓이제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원자력에너지든, 태양열 풍력 수력 등 재생가능 에너지든 에너지기술의 발전이 인류의 에너지 수요를 충족시킬 수 없다는 데 동의한다. 서구 선진국을 모델로 한 현재의 소비생활양식은 어떤 에너지기술로도 지탱할 수 없다는 것이다.

독일의 환경과학자 에른스트 울리히 폰 바이츠제커는 ‘경제의 세기’가 가고 ‘환경의 세기’가 온다고 말한다. 소비가 생산을 촉진한다던 산업시대와 달리 이제는 절약과 에너지의 효율적 이용이 미래사회의 행복을 창출한다는 것이다.

‘이성’을 믿고 신의 자리까지 넘보던 인간은 창조의 기술을 제대로 배우기도 전에 파괴의 기술부터 익혔고, 이젠 그 ‘이성’마저 의심받는 시대다. 주체하지 못하는 욕망의 불덩이를 안고 정상만을 향해 기어오르던 인간에게 위태로운 최상의 자리보다는 2인자의 자리에서 중용을 지키며 분수에 맞게 살기를 권하던 ‘주역(周易)’의 가르침이 새삼 소중하게 들린다.

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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