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훼를 키우는 것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함이다. 운치와 지조가 없는 것은 절대로 감상해서는 안된다. 그런 것을 가까이하는 것은 선비가 비루한 사내와 한 방에 있는 것과 같다.”―강희안
‘높이 맺혀 있는 둥근 꽃봉오리는 모든 것의 중심을 본뜬 것이며… 일찍 심었어도 늦게 피어나는 것은 군자의 덕과 같고 서리를 무릅쓰고 꽃을 피우는 것은 강직함을 상징한다. 술잔에 가볍게 떠 있는 꽃잎은 신선의 먹거리라.’
이 책에 나오는 국화에 관한 글의 한 대목. 국화 한송이에서 우주를 발견하고 군자의 도를 생각하며 더불어 낭만적인 흥취까지 노래했던 사람, 강희안.
‘양화소록(養花小錄)’은 500여년전 15세기 조선초의 대표적 선비화가 강희안의 ‘꽃 가꾸기에 관한 짧은 기록’이다.
그가 직접 화초를 키우면서 터득한 화초의 특성과 재배법, 각각의 화초에 관한 옛사람들의 기록, 화초의 품격을 논한 문장이나 시, 그리고 자신의 생각을 담았다. 여기서 다룬 대상은 노송 대나무 국화 매화 난초 연꽃 석류화 치자화 사계화(월계화) 창포 등 모두 17종의 꽃과 나무와 괴석(怪石·조경이나 분재에 사용하는 추상적인 모양의 돌).
우선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원예서적이라는 점이 이채롭다. 이 책의 매력은 복잡함 화려함보다는 담백함을 즐겼던 선비화가의 취향이 그대로 담겨 있는 점. 바위에 턱을 괴고 여유 있게 물가의 풍경을 감상하는 선비의 모습을 그린 저자의 명품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처럼. 그래서 부제도 ‘선비화가의 꽃 기르는 마음’이다.
이 책에서 읽어내야 할 것은 단순한 재배 기술이 아니라 꽃을 바라보는 선비의 정신세계다.
강희안은 소나무에서는 대장부 같은 지조를, 국화에서는 탈속(脫俗)과 은일(隱逸)의 모습을, 매화에서는 지고지순한 품격을, 춘란에서는 한결같은 고결함을, 창포에서는 굴하지 않는 절개를, 월계화에서는 진실과 순수를, 괴석에서는 흔들리지 않는 덕을 찾아낸다.
꽃의 삶에는 이처럼 자연의 이치와 천하를 다스리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꽃을 기를 땐 이같은 품성을 그대로 살려야 하고 그렇게 화초를 길러 항상 마음으로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 강희안의 생각이다. 풀 한포기, 나무 한그루에서도 삶의 내면을 발견하고자 했던 선인들의 깊이와 여유, 낭만이 돋보인다.
강희안은 이렇게 말한다. “화훼를 키우는 것은 사람의 심지를 굳게 하고 덕성을 기르기 위함이다. 운치와 지조가 없는 것은 절대로 감상해선 안된다. 그런 것을 가까이 한다는 것은 선비가 비루한 사내와 한방에 있는 것과 같다.”
꽃을 통해 바라본 인생사. 500년 넘는 세월의 흐름을 뛰어넘어 지금의 우리에게도 많은 생각과 여유를 제공한다.
실용적인 정보도 이 책의 빠뜨릴 수 없는 덕목. 국화 뿌리는 물을 싫어하니 직접 물을 주지 말고 물에 담근 종이를 뿌리와 줄기에 연결시켜야 한다는 점 등등. 그 옛날의 꽃 가꾸기 방식이 읽는 이를 정겹게 한다. 꽃이 나올 때마다 곁들인 식물학자 김태정씨의 간단한 설명도 도움을 준다.
이광표기자<문화부기자> kp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