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은 여러 얼굴을 가지고 있다.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져 있는 것은 혁명의 정치적 얼굴이다. 기존 권력의 붕괴와 새로운 집권세력의 등장, 그리고 그 과정에서 철철 넘치는 피와 처형―그러나 이 책은 정치에는 별 관심이 없다.
1998년 ‘혁명의 문화사’라는 강좌를 담당했던 저자들은 혁명의 또 다른 얼굴, 즉 서민의 일상과 관련된 대목 그러니까 우리가 문화라고 총칭하는 것들과 혁명의 상관관계를 따진다. 한 예로 노동과 문화의 관계에 대한 생각을 따라가 보자. 자본주의는 노동에 숭고한 의미를 부여한다. 그래서 일을 많이 하다보니 자유시간이 너무 짧다. 스스로 대안적 삶을 추구할 여유가 없다. 짧은 휴식을 끝내고 빨리 일로 복귀하려다 보니 자연히 노동문화는 자극적이고 소비적인 문화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문화가 문화다우려면 쉽게 말해 좀 놀 수 있어야 한다. 게으를 수 있는 권리가 필요하다. 그러므로 문화예술은 자본주의적 노동의 삶을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어떤 힘을 가지고 있다. 구체적인 예로 이 책에 등장하는 멕시코의 사빠띠스따는 발전의 이데올로기를 거부한다. 자본이 인류와 생태계를 파괴하는 것에 저항하며 발전이라는 이름 속에 숨어 있는 잔인성을 고발함으로써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추구한다.
장시간 교육, 장시간 노동으로 생각할 줄도 모르고 놀 줄도 모르는 대중을 양산했다는 지적은 새로운 천년을 눈앞에 둔 우리 모두가 심각하게 되새겨 볼 말이다. 실제로 많은 개인들은 자신이 평생을 바쳐 무엇을 하고 싶은지조차 알지 못한다. 자기 삶을 스스로 조직할 줄 모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문화사회는 노동이 지배하는 사회가 아니다. 인간의 정신적 자유와 자율적인 활동이 지배하는 사회인 것이다.
시켜서 하는 노동이 아니라 하고 싶어 하는 일일 때 일은 몰입할 수 있는 취미이며 문화가 된다. 개인은 일을 통해 자신을 구현하고 조직은 개인의 성과를 통해 발전한다. 이것이 지식사회에 대한 희망이며 기대이다.
혁명은 현재의 삶 속에서 실현되지 않은 것들을 구현하려는 의지이다. 지루한 자신의 삶 속에 혁명을 한번 일으켜내고 싶은 사람은 이 책을 통해 혁명의 다차원적 개념과 친숙해질 필요가 있다.
(변화경영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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