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단 화제]김준태 이태수 강은교, 새 시집 나란히 출간

  • 입력 1999년 11월 12일 18시 29분


미세한 더듬이로 시대의 아픔과 진행을 감지해내는 존재. 시인이란 흔히 그렇게 정의된다. 20세기의 후반부를 치열하게 앓아온 시인들에게 새 밀레니엄은 어떤 모습으로 열리고 있을까.

지방에 뿌리를 내린 50대 시인 세 사람이 각각 시집을 냈거나 곧 낼 예정이다. 최근 나온 강은교(54)의 ‘등불 하나가 걸어오네’(문학동네), 17일 이후 출간될 이태수(52)의 ‘작은 불 하나 밝혀 들고’(문학과지성사)와 김준태(51)의 ‘지평선에 서서’(〃).

80년 ‘아아 광주여, 우리나라의 십자가여’로 시대의 아픔을 소리높이 노래했던 김준태 시인은 다가오는 2000년의 지평을 ‘밭’에서 찾고 있다. 시집의 1부로 마련된 58편의 ‘2000년 밭 시’는 짙푸름으로 가득찬 전망을 보여준다.

‘밭이 가르쳐 주는/침묵의 교훈에 따르면/인간은 늘 새로운 씨앗을 뿌려야 하리라//밭은 언제나/묵은 사상과 이데올로기를 썩혀서/그걸로 거름을 삼은 뒤, 새 싹을 틔운다’(밀레니엄)

그에게 새 세기란 ‘무진장한 밥과 생명력과 사랑과 희망과 미래가 드넓게 출렁이는 지평선, 모성과 다산성의 원형질과 DNA로 그득한 저 푸른 지평선’(시인의 말)으로 다가오는 것. 평론가 김진희는 “그에게 밭은 80년대 생명성의 강조를 넘어, 이제는 미래의 역사와 시가 획득해야 할 시공간으로 확대된다”고 해석한다.

반면 대구에 터잡은 이태수 시인에게서 세기전환은 ‘어둠’으로 드러난다. 그는 ‘봄이 왔는데도 봄은 오지 않는 이 세기말의/어둠 한가운데서 그래도 하염없이/봄을 기다린다’(봄이 와도 봄은 오지 않고)라고 노래하며 전망의 희박함, 불투명성을 짚어낸다.

‘잔고기는 물가에 살고 큰고기는 깊은 물에 살지만,/지금은 잔고기들의 세상이므로 혼란이 가라앉지 않는다’(슬픈 우화 2) 그렇게 낮은 음조의 언어로,세간의 혼탁함을 그는 한탄한다.

시집의 제목 ‘작은 불 하나 밝혀 들고’는, 그가 시대의 어둠 속에서 ‘무거운 수레바퀴 굴리면서(중략) 가슴은 뜨겁게, 이마는 차갑게’(작은 불 하나 밝혀 들고) 가기 위함이다.

부산에 17년 째 살고 있는 강은교 시인 역시 시집의 제목 속에 ‘등불 하나’를 들여놓고 있다. 그러나 그의 ‘등불’은 ‘내 속으로 걸어 들어와/환한 산 하나가 되네’라며 탄성을 자아내게 하는, 교감과 의사소통의 매개이자 주체인 밝은 빛이다. 그의 새 시집은 첫 장부터 나와 상대방 사이의 공진(共振), 떨림, 교감을 간절히 소망한다. ‘우리는 언제나 두드리고 싶은 것이 있다/그것이 창이든, 어둠이든/또는 별이든’(빗방울 하나가·5)

시인은 사물의 현상 이면에 있는 실체를 향해 끊임없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다. 개인과 개인이, 정신과 사물이 격리되어 가는 시대 속에서도 ‘만남’이 주는 위로와 따뜻함을 그는 신뢰하는 것이다. ‘모든 벽은 외롭지 않습니다/또하나의 벽과 만나고 있는 한’(길이 우두커니)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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