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재일사업가 하정웅씨 기증 교포작품전

  • 입력 1999년 11월 14일 18시 50분


재일동포 사업가 하정웅씨(60)가 30여년간 수집한 미술품 680여점을 광주시립미술관에 기증했다. 93년 1차로 210여점을 기증한데 이어 올해 470여점을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30일까지 하씨가 기증한 작품들로 특별전을 연다. 수집품 중에는 국내에서 감상할 기회가 드물었던 재일동포 작가들의 작품이 다수 포함돼 있다.

조양규의 ‘31번 창고’, 전화황의 ‘미륵보살’, 송영옥의 ‘작품69’, 문승근의 ‘활자구’ 등을 볼 수 있다. 조양규의 ‘31번 창고’는 현대 도시문명속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무표정한 얼굴, 로봇을 연상시키는 형상, 공장의 한 부품처럼 변하고 개성이 사라진 인간의 비애를 나타냈다.

전화황은 불상화가로 일본에 알려져 있다. 번뇌를 극복하려는 의지를 담은 ‘불상’ 시리즈가 유명하다. 일본에서 “조선의 긴 전통을 계승하는 고요함과 적막함”을 보여준다는 평을 받았다.

송영옥은 ‘작품69’ 등을 통해 재일동포로서 겪는 고난과 핍박을 표현했다. 문승근은 ‘활자구’ 등 추상적인 판화작품을 남기고 35세에 숨진 작가. 이밖에도 곽인식 곽덕준 등의 작품이 전시된다.

광주시립미술관 장석원 학예실장은 이번 작품들이 “재일교포로서 일제시대이후 험난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던 통한(痛恨)의 미학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하정웅은 한국과 일본의 화단에서 소홀하게 다루어질뻔한 작품들을 발굴해 보존했다는 평을 받고 있다.

김종주학예사는 “하씨가 기증한 작품 총액은 시가로 환산하면 200억원은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조르주 루오의 ‘생각하는 피에로’, 피카소의 판화 ‘여인’, 베르나르 뷔페의 ‘정물’ 등 외국작가들의 작품과 황용엽의 ‘삶의 이야기’ 황주리의 ‘땅에서’ 등 국내 작가의 작품도 다수 포함돼 있다.

전체적으로는 자연의 강인한 생명력, 동양의 정신세계, 고난을 딛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그림들이라는 평이다. 062―525―0968

▼하정웅은 누구인가▼

하정웅씨는 39년 일본 오사카에서 태어났다. 고교졸업후 야간 미술학교를 다니던 미술가 지망생. 가정 형편이 어려워 화가의 꿈을 접고 사업에 뛰어들어 고생 끝에 가와모토전기상사를 설립해 성공했다.

이후 미술품수집에 나선 그는 자신과 작가들의 삶이 “무엇인가를 간절히 기도하는 모습”처럼 여겨졌다고 말한다.

수집품들로 일본에 ‘기도의 미술관’을 세우려던 계획을 취소하고 대신 이를 한국에 기증했다. 광주시립미술관은 이번 전시 명칭을 ‘기도의 미술전’으로 정했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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