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정일이란 이름을 들으면 당신은 무엇이 연상되는가. 수동 타이프 라이터를 두드리며 '햄버거에 대한 명상'을 하는 문학소년? 시와 소설, 희곡을 넘나들며 재기를 발휘하는 전방위적 문화게릴라? '내게 거짓말을 해'보라며 10대 소녀와 중년남자의 파괴적 사랑을 그려 기성세대의 엄숙주의에 '똥침'을 날리는 반항아?
이 모두는 장정일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것만이 장정일의 정부는 아니다. 최근 그가 발표한 '중국에서 온 편지'는 진지한 문학소년이자 재치있는 문화게릴라, 반항아로서의 그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으면서, 또한 이제껏 보지 못했던 또다른 글쓰기 방식이 시도된 작품이다.
이번에 그가 선택한 장르는 '역사소설'. 이 작품은 사마천의 '사기'에 기록된 진시황과 그의 장자 부소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전개된다. 진시황의 40명 공자 중에서 가장 무용이 뛰어나고 어질었다는 부소. 그러나 부소에 대한 기록은 "부왕의 노여움을 사서 변방으로 유배되었다가 진시황의 유언을 따라 자결했다" 는 정도밖에 역사서에 남아 있지 않다. 작가는 바로 이같은 기록의 '빈틈'을 노려 소설적 상상력을 개입시킨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관계는 장정일의 그간의 작품속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해온 살부(殺父)콤플렉스구도를 고스란히 유지한 것. 작가에게 있어 '아버지'란 세상의 폭력과 권위주의를 나타내는 아이콘이며 "내용이 아닌 스타일을 통해 명령하는 전형적인 독재자"다. 뒤이어 부소, 아니 작가는 주장한다. '자신은 지배집단의 스타일을 제도화하는, 평론가라는 밥버러지 스키들에 의해 박해받는 소수언어집단"이라고. 결국 작가는 부소의 입을 빌려 자신을 박해 혹은 탄압했던 기성세대의 보수주의에 야유를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한편 소설의 스타일 면에서는 가벼움과 분방함이 두드러진다. 육두문자와 비어가 심삼찮게 삽입되는가 하면 분명 시대적 배경은 진나라인데 웬 벤츠며 그랜저가 등장하고 돈키호테와 산초 판자, 빔 벤더스의 '베를린 천사의 시'가 인용되기도 한다. 한술 더 떠 작가는 화약이며 나침반, 심지어 오디오가 실은 변방에서 할 일없이 시간을 보내던 부소에 의해 발명된 것이라는 능청까지 떨고 있다. 작가는 권위주의를 조롱하고 비웃기위한 무기로 진지함보다 가벼움과 발랄함이 더 적당하다고 판단한 것일까?
김정희<동아일보 주간동아기자>y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