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거일씨의 글을 읽으면 화끈하지는 않아도 뭔가 잡히는 게 있다. 그의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와 ‘높은 땅, 낮은 이야기’도 재미있게 읽었지만 산문집 ‘현실과 지향’ ‘진단과 처방’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도 화롯불과 같이 온기가오래 간다.
산문집엔 경제분야가 많은데 주장이 차분하고 논리적이다. 보통 경제학자들의 글은 정교한 대신 난삽하고, 저널리스트들은 명쾌한 대신 기반이 부실하기 쉽다. 복거일씨의 경제분야 글은 그 중간쯤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겠다. 아마도 경제학 전공의 탄탄한 전문지식과 타고난 문장, 거기다 겸허한 태도의 산물이 아닌가 싶다.
그의 글은 함부로 분노하지 않고 작은 일에 흥분하지 않으며 현실을 직시, 인정하면서 부단히 본질에 접근한다. 그 점이 강점이자 약점이다. 그래서 숨은 독자가 많은 반면 세상에선 개혁정신이 부족하다는 소리도 듣는 모양이다. 정작 복거일씨 자신은 별로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이번에 나온 ‘동화를 위한 계산’도 예(例)의 복거일류 평론집이다. IMF 사태로 온 나라가 흥분상태에 있지만 복거일씨는 요지부동이다. 냉철한 머리로 사태를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다. 뜨거운 가슴이 없어서가 아니라 잘못하면 되레 일을 그르치기 쉽다는 것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자유주의와 시장경제를 비난하는 소리가 빠르게 또 크게 나온데 대해 다소 걱정스러운 눈치다. 논리를 따지며 설득하는 목소리는 간결한 구호나 야유에 맞서기는 어렵지만 그래도 거친 기세를 조금이라도 줄일 수는 있다는 것이다. 복거일씨는 그런 역할을 자임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글 곳곳엔 함성보다도 더 큰 소리가 감춰져 있다. 냉혹한 이 세상에서 꿈을 현실화하려면 현실적 감각과 정확한 계산능력을 갖추라고 소리치고 있는 것이다.
최우석(삼성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