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는 외견상 화려했던 시의 시대로부터 논의를 출발시킨다. “80년대 전반기의 문학을 휩쓴 것은 분명 시의 홍수였다. 시가 만발한 광장의 전면에는 정치적 정복을 달성한 권력의 문화적 관용이 있었다.”
곧이어 일변한 상황. 저자는 “활황을 구가한 90년대 소설과 달리, 시는 소설을 대신해서 문학에게 닥친 죽음의 위기를 몽땅 홀몸으로 떠맡고 체현해야만 했다”고 진단한다. 그러므로 ‘무덤속’은 이중의 상황이다. 그것은 90년대 시가 문학 전반을 대신해 겪고 있는 상황의 비유이며, 90년대 시인들이 죽음을 통해 생의 방법론을 드러내 온 노력을 함께 뜻한다.
▼ 무덤속은 이중상황 비유 ▼
저자에게 마젤란이란 ‘탐험의 미궁 속에서 소실되어 스스로 탐험의 심연이 되어버린’존재이며, 무덤 속에 있으므로 당연히 ‘죽은’존재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책의 초점은 시의 몰락 그 자체가 아니다. 시가 죽음으로써 사는 방식, 즉 저의 본성을 박탈당한 상태에서 본성을 지켜가는 방식이다.’
▼ 진이정 기형도등 망라 ▼
저자의 돋보기 아래 놓인 시인의 명단은 진이정 이승하 채호기 유하 등 90년대 발현한 한국시의 예각(銳角)을 거의 망라하고 있다.
요절과 함께 90년대 시학의 넘치는 수원지(水源地)중 하나가 된 기형도에 대해서는 ‘죽음’과 ‘텍스트’가 가진 존재양식의 긴밀한 연관을 읽어내고 있다. 문학과지성사.
〈유윤종기자〉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