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보이는데 그래.
하고 내가 말했다. 송은 나를 이끌고 병원 본관 앞의 정원으로 데리고 갔다. 우리는 들판이 멀리 내다보이는 나무 아래 벤치에 가서 앉았다. 나는 그 전에 송영태가 군대와 감옥을 거치는 동안에 결핵을 앓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고 정희네 병원에서 그를 만났을 때에도 폐에 동공이 생겼다는 말을 들었던 적이 있었다. 송이 말했다.
몸이 나빠졌대. 앞으로 한 일 년 꼼짝말구 쉬면서 약 먹어야 해.
잘됐지 뭐.
나만 쏙 빠져 나온 것 같아서 못견디겠어.
이젠 대충 끝이 났다구 보는데. 직선제루 간다잖아.
사실은 이제부터 시작인데. 달라진게 뭐가 있어.
느이들 원하는 게 뭔데?
민중이 권력을 잡는 일. 그리고 미제와 앞잡이들을 몰아내는 일이지.
너 몸이나 돌봐라. 나는 그저 현우씨나 나왔으면 그 이상 바라는 건 없어.
아마 당분간 더 기다려야 할 걸. 반동적 과도기가 길어질지두 몰라.
친구들은 어때… 다들 잘 지내구 있겠지.
핵심들은 많이 검거됐지. 현장 쪽엔 아직두 많이 박혀있을 거야. 나는 이젠 현장은 좀 무리인 것 같아.
그래 송 형이야 이제부터 잘 먹고 잘 살면 되잖아. 누가 뭐래, 할만큼 했잖아.
공부나 열심히 해볼까.
그대의 소질이 공부에 있다는 건 누구도 부인 못할 거야. 집에서두 이젠 안심하시겠구나.
송이 눈을 꿈벅이고 있더니 무슨 티가 들어간 듯이 손가락으로 눈가를 찍어냈다. 그는 비죽비죽 울음을 터뜨렸다.
야아 사내 자식이 왜 그래.
그냥… 좀 섭섭해서….
나는 얼결에 그의 어깨에 팔을 둘러 주었는데 녀석이 내게로 상체를 구부리더니 내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는 그런 자세로 벤치에 한참이나 앉아 있었다.
나 그만 가 볼게.
나는 영태의 등을 몇번 토닥여 주고나서 일어섰다. 그가 좀 쑥스러워 할까봐 나는 녀석의 얼굴과 정면으로 마주치지 않으려고 땅바닥만 내려다보았다.
여름 방학이 끝나고 내가 개강 준비를 하고있을 무렵에 지방의 학교로 두툼한 편지 한 통이 왔다. 겉봉을 보니 최미경 올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윤희 언니에게
언니, 저 미경이에요. 아직도 거기 그대로 잘 살아 있습니다. 송 선배는… 지금쯤은 언니도 소식을 알고 계시리라 믿어요. 공장에서 철야 하다가 각혈을 하고 쓰러졌어요. 우리는 송 선배 신변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한 끝에 그를 가족들에게 인계하기로 결정을 했답니다. 저는 언니에게 연락을 해드리려고 그랬는데 선배가 나중에 자기가 하겠다면서 절대로 알리지 말라고 그래서 그냥 놔두었어요. 지금쯤은 연락을 하셨을 거라고 믿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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