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출판통신/파리에서]조혜영/'나의 큰 아파트'

  • 입력 1999년 11월 26일 19시 46분


▼ '나의 큰 아파트' 크리스티앙 오스테르 지음/미뉘출판사 ▼

이달초 공쿠르상에 버금가는 프랑스의 주요 문학상인 메디치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크리스티앙 오스테르의 최신작 ‘나의 큰 아파트’. 이 작품이 메디치상의 창설 이념에 걸맞는 참신성으로 프랑스 독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1958년에 창설된 메디치상은 새로운 문체와 어조로 문학에 기여하는 소설에 주어진다.

저자는 1949년 파리에서 태어나 1989년 소설 ‘배구’로 알려지기 시작해 ‘모험’(1993), ‘전화를 거는 폴’(1996), ‘소풍’(1997) 등을 출간해왔다. 이번 수상작은 그의 일곱번째 소설.

그의 작품 소재는 꿈을 상실하고 우연을 숙명처럼 여기며 사는 현대인의 일상. 이 작품 역시 같은 소재를 다루고 있다.

‘나의 큰 아파트’의 주인공 뤽 가바린은 파리의 한 소시민으로, 느닷없이 직장에서 해고당하고 동거하던 여인도 예고없이 그를 떠난다. 아파트 열쇠를 잃어버리고 호텔을 전전하다 그곳에서 아파트의 전화메시지를 듣던 중 옛 여자친구가 남겨놓은 약속을 듣고 약속장소로 달려간다.

그러나 그녀를 만나지 못하고 만삭인 플로르라는 낯선 여인을 만나게 된다. 그녀를 쫓아가 사랑 없는 가정을 꾸민다. 그리고 동굴안내원인 플로르 오빠의 소개로 동굴 안내원이 된다. 자신의 취미와는 전혀 별개인 동굴 안내원. 소설은 그렇게 끝을 맺는다. 독자는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무관심과 우연의 연쇄가 만들어낸, 처음의 인물과 전혀 다른 인간을 발견한다.

크리스티앙 오스테르는 이 소설을 통해 누구와도 닮지 않은 새로운 인물을 창조하고 있다. 우연이 지배하는 이 불확실한 삶 가운데에서, 유일한 확신인 양 ‘언어’와 투쟁하는 인간을 보여준다. 문법, 적확한 단어의 선택과 묘사, 문장들 간의 논리에 병적으로 집착한다. 누구나의 삶일 수도 있는 이야기지만 작가가 만들어낸 세계는 역시 주인공의 의지를 반영한다. 이 작품은 언어의 치밀한 구성을 통해 엮어낸 이치가 정연한 하나의 소우주로 평가받고 있다. 오스테르의 창조력이 다시 빛나는 작품이다.

조혜영<프랑스 국립종교연구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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