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자들은 미리 제출한 논문을 통해 ‘작심한듯’ 현정부의 시장논리에 입각한 인문학 경시와 ‘BK 21’사업의 문제점을 공격하면서 ‘연구교수제’도입 등 대안을 제시했다.》
▽조동일교수(서울대·국문학)〓한국에서 제대로 학문을 하는 것은 ‘독립운동 수준’의 자기 희생이다. 교수의 연구비를 대폭 늘리면 연구가 잘 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잘못이다. 현 제도는 장기적이고 일관성 있는 연구 대신 연구라는 이름의 ‘투기’를 일삼도록 부추기고 있다.
해결방안은 무엇인가. 우선 교수의 자격규정을 다시해야 한다. 교육은 하지 않고 연구에만 종사하는 사람도 교수로 임명, 자율성과 신분안정을 부여하는 대신 충실한 연구성과를 내놓도록 해야 한다.
보다 적극적인 대책은 정부예산으로 대학의 연구소를 육성하는 것이다. 구체적 방안은 대학의 연구소에 반드시 연구교수를 두도록 제도화하고 연구교수의 인건비를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이다. 대학의 연구소도 통폐합을 능사로 삼아 대형화해야 한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연구교수는 기존의 교수 가운데 신청을 받아 선발함으로써 연구교수가 강의교수 보다 하위의 교수라는 그릇된 사고가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하며 서로 넘나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또 연구 업적이 아니라 연구비 사용에 대한 회계 감사를 평가의 척도로 삼아서는 안된다.
‘BK21’의 치명적 약점은 교수들의 잡무를 늘리고 연구할 시간을 뺏는 것이다. 이 계획이 예정대로 진척된다면 박사 실업자가 더 많이 생길 것이다.
▽소흥렬교수(포항공대·철학)〓각 대학이 앞다퉈 추진하고 있는 ‘학부제’가 인문학을 학문적 위기에 처하도록 한 가장 큰 제도적 원인이다. 대학의 기능은 교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교수들의 연구에도 있으므로 실용성은 적지만 사회 문화적으로 필요한 고전학과의 경우 학부 전공생이 없더라도 교수들이 개의치 않고 연구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정구복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사)〓인문학의 기반을 확대하기 위한 새로운 방책이 마련돼야 한다. 논문이 중앙의 학회지에 실려야 한다는 학술진흥원의 형식적인 정책이 지방 인문학을 죽이고 있으며 외국의 학회지에 실려야 최상이라는 형식적 발상이 국학을 죽이고 있다. 학술진흥재단의 포스닥 지원제도는 사탕발림에 불과하다. ‘BK 21’도 자연과학자들의 발상이다.
인문학자들도 고전문헌의 울타리에서 빠져나와 현실사회의 다양한 삶의 모습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지배층이나 지식인 중심의 연구에서 대중이나 하층민의 삶을 연구하는 자세로 관심영역을 넓힐 필요가 있다.
▽장회익교수(서울대·물리학)〓인문학의 중요한 역할은 문명에 대한 올바른 방향감각을 갖게 해 준다는 점이다. 따라서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문적 과제의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과학기술 시대의 인문적 과제는 고전적 형태의 인문학에 대한 강조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달라진 상황에 대해 창조적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점이다.
〈오명철·김형찬기자〉osca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