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철환PD 방북기上]경쾌한 노래 맞춰 '덩실덩실 춤'

  • 입력 1999년 11월 29일 19시 13분


《MBC TV의 주철환 PD가 23∼27일 북한을 다녀왔다. 12월16일 평양 봉화예술극장에서 열리는 ‘남북 대중음악제’개최 협의차 평양에 갔다온 주PD의‘북한대중문화기행’을 두차례에 걸쳐 싣는다. 국내의 간판급 오락PD인 주씨의 눈에 비친 세기말 북한의 문화풍경을 생생하게 소개한다.〈편집자〉》

11월24일 수요일 저녁. 묵고 있는 평양 고려호텔 건너편에 있는 ‘화면반주음악장’(단란주점)으로 안내받았다. 창광거리에 있어서인지 ‘창광 화면반주음악장’이었다. 4명의 여성 접대원은 웬만한 배우 뺨치는 미모와 가창력을 지니고 있었다. 한명은 최진실과 매우 닮아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남한 노래라고는 양희은의 ‘아침 이슬’ 밖에 없었다. 애교가 많은 한 종업원은 나를 ‘연출자 선생님’ 대신 ‘사령관’이라고 불렀다. 북한에서는 연출자를 사령관이라고 한다고 했다.

여느 남한의 가라오케와 크게 다를 게 없었다. 우리가 자리에 앉자 여성 종업원들도 함께 앉았다. 영화기획자 유인택씨 등 일행 6명은 ‘남북대중음악제’에 참가할 북한가수 리경숙의 ‘반갑습니다’를 요청했다. ‘반갑습니다∼’라는 구절이 반복되는 노래였는데 70년대 남한대중음악의 주류였던 트로트를 연상시켰다.

노래가 나오는 가라오케 화면을 통해 리경숙의 모습을 처음 봤다. 대단한 미인이었다. 그동안 내 프로그램을 거쳐갔던 수많은 연예인들과 매칭하려 해도 딱히 떠오르지 않을 정도로 독특한 얼굴이었다. 미스터리 멜로드라마의 주연으로는 안성맞춤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국적이었다.

종업원들은 ‘내 이름 묻지마세요’‘휘파람’‘축복하노라’ ‘녀성은 꽃이라네’‘다시 만납시다’ 등을 불렀다. 노래마다 화면에는 다양한 영상이 떴다. 대부분이 군가 풍일 것으로 예상했는데 경쾌한 리듬이 많아 남한 젊은이들도 받아들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뮤직비디오는 대개 여자가 ‘나 잡아 봐요’하면 남자가 ‘게 섯거라’하는 식으로 쫓아가는 스타일이었다.

인상적인 것은 출연자들이 남한의 뮤직비디오처럼 홍보차 나온 신인들이 아니라 모두 공훈배우 또는 인민배우들이라는 점이다. 남자들은 하나같이 모델을 방불케 했고 여자들은 예뻤다. 고전적이면서도 자연스러운 느낌이 들도록 화장했고 헤어스타일은 반쯤 내리고 머리를 뒤로 올린 스타일이 대부분이었다.

가라오케에서 두어 시간을 보내면서 이곳에도 형태만 다를 뿐이지 젊음이 있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표현하는 방법이 다른 게 아닐까.

내내 목석처럼 있던 나도 ‘노들 강변’이라는 노래가 나오면서는 긴장이 풀렸고 “사령관님도 같이 하시라요”라는 한 여성종업원의 말에 무대로 나가 춤을 췄다. 물론 춤은 힙합이나 ‘도리도리춤’이 아닌 ‘덩실덩실춤’이었다. 역시 그네들 말대로 대중문화의 힘은 ‘범인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방송을 제작할 북한 중앙방송 제작진은 생각이 열려 있었다. 김청일이라는 사람은 ‘국장(局長)’이면서도 그다지 위세를 부리지 않았다. 리광철 부장도 호의적이었고 방송장비를 자랑스럽게 소개했다.

리부장은 “이번 공연에는 독일산 벤츠 중계차를 사용할 것”이라며 “중계카메라는 일제 소니로 여덟대를 배치하겠다”고 했다. 테이프도 국내 방송사에서 사용하는 베타를 사용하고 있었다. 중앙TV는 직원이 3000여명으로 KBS와 MBC의 중간규모였다.

호텔에서는 주로 TV드라마를 봤다. 드라마인지 영화인지 구별이 되지 않았다. 내용은 반미(反美) 등으로 다양하지 않았다.

여성교통안전원(경찰)이 주연한 영화를 봤다. 새벽에 안내를 하고 있던 주인공 앞에 전국 시찰 중인 김정일노동당총비서가 지나가면서 “고생한다”고 말했다. 주인공이 집에 돌아가 어머니에게 자랑했다. 그 뒤 김정일총비서는 여경찰 모두에게 방한복을 선물했다는 내용이었다.

영상은 미학적으로는 꽤 깔끔해 보였다. 하지만 우리와는 색상이 틀려서 처음에는 어색한 것도 사실이었다.

그 하루전인 23일. 짙은 안개가 낀 중국 베이징공항을 이륙한 평양행 북한 고려항공 여승무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나는 사람을 시적 형태로 분류하길 즐긴다. 북쪽 사람들은 서정시도, 서경시, 서사시도 아닌 극시에 가깝다는 느낌을 받았다.

기내에서 쉼없이 들려오는 음악은 군가풍이었는데 가사는 제대로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4시55분. 평양 순안공항에 착륙했다.

오후 7시40분경 고려호텔에서 만찬이 벌어졌다.

아태평화위원회측 참사가 한 “통일을 위해 힘있는 사람은 힘으로, 지식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돈있는 사람은 돈으로 특색있는 기여를 해야합니다”라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음식점의 ‘접대원 동무’에게서 한국TV에 소개되는 ‘통일전망대’나 ‘남북의 창’에서 보던 여성진행자의 강인한 공격적 어조는 찾기 어려웠다.

호텔방에서 선택할 수 있는 TV 채널은 한개였다. 안내원은 오후 5시부터 11시까지 방송된다고 했다. 뉴스와 영화가 주류였다.

이튿날 오전 8시. 호텔 건너편에서 갑자기 음악소리가 요란하게 들려 왔다.

중학생쯤으로 보이는 10여명이 행진곡풍의 음악을 연주하고 있었다. 소년취주악대가 매일 그 시간에 기량도 늘일 겸 출근하는 노동자들의 사기(?)도 진작시킬 겸 15분 가량 연주한다는 것이었다.

김일성의 생가인 만경대의 안내원은 리희영이었다. 러시아어를 전공했다는 그의 설명은 훈련에 의한 도식이 느껴지긴 했지만 북한의 말하기, 읽기 교육이 대단하다는 느낌이 들게 했다. 끊어 읽기, 의미 있는 부분 강하게 말하기 등 내용 전달이 수준급이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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