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년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 초기에 급증했다가 올 상반기에는 오히려 줄어들었던 해외이민 희망자가 올 하반기 들어 다시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29일 한국 현대 신세계 호주이주공사 등 이민알선업체 관계자들에 따르면 최근 해외 이민 상담자가 상반기에 비해 30∼40% 가량 늘어났다.
현대이주공사의 경우 9월까지 하루 평균 10건 정도였던 캐나다 이민상담이 10월 중순 이후 하루 20여건으로 증가했다.
21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라마다르네상스호텔에서 신세계이주공사가 주최한 해외이주 설명회에는 10월 이전에 비해 4배 가량 늘어난 70여명이 몰려 성황을 이뤘다.
신세계이주공사 박필서(朴必緖·41)사장은 “참석자중에는 불안정한 사회에 대한 비판을 털어 놓는 고학력자들이 유난히 많았다”고 말했다.
29일 한국이주공사를 찾아온 대기업 부장 출신의 김모씨(48)는 “한번 불이 나면 수십명이 떼죽음을 당하는데다 언론문건이다 옷로비다 매일같이 뭐가 뭔지 모를 만큼 시끄러운 세상을 떠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뉴질랜드 이민을 추진중인 이모씨(46)는 “인천 호프집 화재 사건을 보면서 이 땅에서는 더 이상 초등학생인 자녀들에게 보여줄 것이 없다는 판단이 섰다”고 말했다.
현대이주공사 상담역 이모씨(39)는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자녀 교육이 주된 이민동기였으나 최근 들어 대형사고와 각종 의혹사건 등 사회문제에 대한 불만을 이민동기로 내세우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말했다.
현정부 들어 외국 자본이 대거 국내에 유입되면서 기업의 국적 개념이 모호해지는 것도 이민 희망자가 늘어난 원인으로 분석된다.
캐나다 이민을 추진중인 박모씨(39)는 “아들이 대대손손 외국에서 살게 하고 싶지는 않다”며 “하지만 아들이 성장한 뒤 원할 경우 다시 귀국해도 한국내 외국인 소유 회사 등에서 더 좋은 대우를 받으며 일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윤인진(尹麟鎭)교수는 “일반적인 이민사유인 자녀교육문제나 각박한 현실도 개선되지 않고 있는데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사회상황이 계속됨으로써 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사회에서 더이상 살 필요가 있는가’라는 고민과 함께 이민을 생각하게 만드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경달·이명건기자〉da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