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로비 3인 '옷'변신 메시지]고비마다 다르게 '옷'으로 말한다

  • 입력 1999년 11월 29일 19시 56분


《미디어학자 마샬 맥루한은 “미디어는 메시지다”라고 했다. 의상 및 사회 심리전문가들은 “옷이 메시지”라는데 이견을 두지 않는다.

입사시험때 면접관이 지원자의 옷차림으로 성격과 심리상태를 파악하듯, 옷은 입는 이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든 ‘어떤 메시지’를 드러내는 것.

‘옷로비 의혹사건’으로 한국의 세기말을 뒤흔든 세 여인이 고비 때마다 입고 나온 ‘옷’은 무엇을 말하려 했을까.

동아일보 미즈&미스터팀은 연세대 황상민교수(심리학)와 일본 문화복장학원에서 의상사회학을 공부한 패션평론가 김유리씨에게 의뢰해 김태정 전법무장관의 부인 연정희씨(51), 최순영 신동아그룹 회장의 부인 이형자씨(54), 강인덕 전통일부장관의 부인 배정숙씨(62) 등 옷로비사건의 주역이 △검찰 출두(6월) △국회청문회 출두(8월) △특별검사실 출두(11월) 때 각기 입었던 옷을 바탕으로 숨겨진 메시지를 분석했다.》

▼연정희씨에 대해▼

황교수는 “3명 중 가장 드라마틱한 의상의 변화를 보였다”고 말한다. 상황에 맞게 옷으로 의도를 전달하려는 노력이 드러난다는 것.

검찰조사 때 연씨는 지적으로 보이는 베이지 옷을 입었다. 그러나 청문회에선 검정재킷에 꽃무늬 블라우스로 ‘시골아줌마’처럼 보이려 했다. 황교수는 “연씨는 TV시청자들에게 ‘난 당신들과 다르지 않다’는 메시지를 주려한 것 같다”고 해석했다.

그러나 특검출두 때는 ‘사과’의 복장이 아니었다는 분석. 포인트는 스카프. 남색계통에 금색 무늬가 있는 고급스러운 것이다.

황교수는 “이날 연씨는 ‘난 달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함으로써 자존심과 자부심을 지키겠다는 의지를 보인다”고 분석했다. 특히 이날 입은 코트의 색상인 남색은 방어적이고 자기주장이 강한 색으로 ‘스스로 비참해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나타났을 수 있다고 황교수는 조심스레 진단했다.

김유리씨는 연씨가 청문회에서 입었던 블라우스에 관심을 보였다. 꽃무늬 블라우스는 옷이 귀한 시절 여성들이 손수 만들어 입던 무명천을 연상케한다. 김씨는 “희미한 빛깔의 무늬는 그의 불투명한 대답만큼이나 의미있는 옷”이라고 말했다.

반면 이에 앞서 검찰조사를 받은 날 연씨의 옷은 연한 베이지 투피스에 검정구두 차림으로 매우 기본적인 차림새였다. 상식적인 사람으로 보이려는 의도가 담겨있다는 풀이.

그러나 특검 출두 때는 “아주 멋부림을 했다”고 김씨는 진단한다. 판단의 근거는 스카프인데 더이상 소박하게 보이려는 의도를 ‘포기’한 듯하다고 김씨는 추측했다. 원래의 취향으로 돌아가면서도 지적인 면을 강조하려는 심리의 발로라는 분석이다.

▼이형자씨에 대해▼

이씨는 일관되게 파스텔톤 의상을 입었다. 황교수는 “파스텔톤은 상당한 품위가 있어야 소화할 수 있는 색상”이라며 “그러나 약하고 공손해 보이는 이미지를 만든다”고 말했다.

“실제 성격이 그러한지는 알 수 없지만 언제나 낮은 톤의 옷만 입고 나오는 것은 어떤 상황이건 자기 성향과 입장을 일관되게 유지하겠다는 메시지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라는 설명.

반면 김유리씨는 미약하나마 이씨의 의지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해석. 검찰출두 때의 옷은 평범한 베이지 차림으로 수수해 보이려고 시도했다는 것. 그러나 청문회 때는 거의 흰색에 가까운 연한 하늘색의 단정한 의상으로 결백을 주장하려는 메시지를 드러냈다고 분석했다. 이어 특검출두 때는 라운드 네크의 브라운 슈트와 스카프의 매치로 잃어버린 품위를 되찾고자 하는 심정이 배어나 있다는 설명.

▼배정숙씨에 대해▼

배씨는 검정이나 회색 등 수도사를 떠올리게 만드는 톤으로 한결같이 ‘참회와 속죄’의 옷차림이었다고 황교수는 분석한다. 다만 청문회 때는 검정계열이라도 엄청나게 수수하고 값싸 보이는 톤이었던데 반해 특검에 출두했을 때는 같은 계열의 색상이면서도 스카프를 착용해 우아함을 연출, ‘사죄’하는 분위기이면서도 ‘당당함’을 지키려 했다고 평가했다. 마침 이때는 변호사를 대동하고 ‘최초보고서’로 추정되는 문건을 폭로하기 위해 나타난 순간이었다.

한편 김유리씨는 “배씨가 청문회 때 입은 은은한 줄무늬의 검정색 재킷은 얼핏 어두운 인상을 줘 병색이 짙은 모습을 강조해 동정심을 불러일으키려는 메시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특히 서울지법 공판 때(9월)의 차림은 검정 재킷과 연회색 바지의 단정한 조화로 ‘선처를 구하려는’ 심리가 드러난다. 반면 특검 때는 검정재킷에 진회색 바지 차림이지만 무늬있는 스카프를 두르고 있어 청문회 때보다 밝고 세련된 느낌을 주었다고 김씨는 말했다.

〈이호갑·이나연·이승재기자〉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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