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과 영상에 익숙한 N세대는 노래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보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듣는 음악’은 물론, 뮤직비디오 등 ‘보는 음악’도 큰 매력이 없다. 이들은 구경꾼의 위치를 벗어나 디지털 뮤직 게임기를 매개로 직접 춤도 추고 드럼도 두들긴다.
국내 게임장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DDR’‘EZ2DJ’‘드럼 매니아’ 등 뮤직 게임기. 여기서 N세대는 “내가 백댄서(드러머 또는 DJ)”라고 주장한다. 강렬한 음악에 맞춰 백댄서의 스텝을 밟거나 디제잉(DJ가 하는 음반 긁기 등)을 하기도 한다. ‘드럼 매니아’라는 기기 앞에서 그들은 영락없이 ‘드러머’가 된다.
최근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익대 근처의 한 게임장. 김종복씨(24·홍익대 전기전자공학부)는 드럼기기의 하나인 ‘퍼쿠션 프릭스’를 신명나게 두들겨대고 있었다. ‘퍼쿠션 프릭스’는 화면앞에 설치된 작은 북을 스틱으로 두드리고 발로 베이스 드럼을 두드린다. 인터넷에서 뮤직게임기 전문 홈페이지(www.dancestage.net)를 운영하고 있는 그는 “‘퍼쿠션 프릭스’는 일본 야마하사의 소형 전자 드럼과 똑같다”며 “직접 두드리다보면 내가 진짜 드러머가 된 만족을 얻는다”고 말했다.
게임전문지 ‘어뮤즈 월드’가 10대 중반∼20대 중반 15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1주일에 뮤직게임기를 30회 이상 이용한다는 대답이 46%. 하루에 네 번 이상 하는 셈이다. 최성재씨(19·대입수험생)는 “흠뻑 빠져들다 보면 백댄서가 되는 꿈을 꿀 정도”라고 말한다.
국내 뮤직 게임기 수는 대략 5000∼7000대로 추산된다. 발판을 PC에 연결하는 가정용 ‘DDR’인 ‘클론과 함께 하는 레츠 댄스’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이같은 뮤직 게임기의 문화적 코드는 ‘하는 음악’. 디지털 기기를 통하면 ‘음악을 한다’는 게 어렵지 않게 돼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N세대는 음악을 즐기는 초점을 ‘엔터테이너 시뮬레이션’을 통한 ‘하기’로 옮기고 있다.
이는 음악 생산자와 소비자의 벽이 허물어지는 현상. 이른바 앨빈 토플러가 ‘제3의 물결’에서 주장했던 ‘프로슈머(생산소비자·프로듀서와 콘슈머의 합성어)’의 예비단계쯤 되는 것으로 보여진다.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뮤직 게임기는 음악을 직접 만들고 소비하는 음악 프로슈머의 등장을 예고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중음악계는 이에 대해 “뮤직게임기는 음악+레저+스포츠+다이어트 등 음악의 복합적인 소비 패턴을 보여주고 있지만 전문적인 창작은 여전히 뮤지션의 몫일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허엽기자〉he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