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학(秘學)이 지식의 수직성(질과 깊이)을 유지하는 담론 형식을 유지했다면, 과학은 지식의 수평성(양과 너비)을 강화했고, 인문학은 지식의 입체성(두터움)을 추구했다.”
유럽지성사를 세 가지 담론 형식을 중심으로 조명한 이 책의 부제는 ‘유럽 지적 담론의 지형’.
경남대 인문학부 교수로 유럽 지성사와 과학사를 연구해 온 저자는 근대 이래 서구의 지성사를 되짚으며 세 가지 담론 형식이 서구의 지성사를 형성했다고 주장한다. 그것은 자연과학, 인문학, 그리고 마술이나 주술과 같은 신비스런 지적 담론을 지칭하는 비학.
저자는 서구의 지식 담론이 변화하는 지형을 15세기 후반부터 18세기 초까지 3세기 남짓한 기간에 걸쳐 추적했다.
그 결과 비학적 담론으로부터 과학적 담론으로, 과학적 담론으로부터 인문학적 담론으로 순차적 차별화가 진행되면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서구 지식 담론의 지형이 거의 결정됐다고 주장한다.
비학은 폭넓은 경험과 관찰을 제한하고 종국적 진리로 연결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입문자에게 스승이 걸어온 길을 강요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에서도 수직적이다.
그런데 17세기 이후 자연과학적 지식이 자연을 지배하는 권력으로서뿐만 아니라 사회적 권력으로 정당화되면서 비학적 상칭체계는 부적합함을 드러낸다.
새로운 자연 지식을 사회적으로 정당화하고 사회적 권력으로 부상시키기 위해서는 비학적인 담론 형식보다는 ‘지식의 공개’에 적합한 담론 형식이 요구되었기 때문이다. 과학에 적합한 언어는 지식을 정확하게 ‘표상’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에 과학적 담론은 이중적 의미전달을 겨냥하는 비학의 수사학을 파괴한다.
그러나 17세기 중반 이후 잠바티스타 비코와 같은 학자는 ‘은유의 회복’을 인문학의 절실한 과제로 천명한다. 비코에게 ‘은유의 회복’이란 이성의 과도한 지배를 치료하고, 과학적 담론의 평면성을 입체화하며, 논리―기계의 지배를 벗어나‘또다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새로운’대안이었다.
저자에 따르면 우리 지식 담론의 지형도 어찌 보면 비슷하다.
“‘비학적인 것’과 ‘과학적인 것’과 ‘인문학적인 것’이 공존한다. 비록 뜨겁지는 않지만 이따금씩 논쟁도 벌어진다.” 문제는 “우리에게는 그 세 가지 요소를 차별할 기준이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저자는 이 책에서 제시한 서구 지식 담론의 지형이 우리 지식 담론의 지형을 재구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기대한다.
“한 인간의 정신에서든, 한 시대나 한 사회의 매너에서든, 지식이 깊이 너비 두터움을 함께 향유할 수 있는 담론 조건을 제시해 보려는 것이 필자의 당초 바람이었다.”
〈김형찬기자·철학박사〉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