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化가 흐르는 漢字]도청(盜聽)

  • 입력 1999년 12월 5일 17시 57분


한자에서 ‘훔치다’는 뜻을 가진 글자가 몇 개 있다. 竊(절)은 야비한 수단으로 훔치는 좀도둑, 盜는 대담하게 훔치는 소도둑, 賊(적)은 흉기를 사용하는 도둑, 偸(투)는 훔치는 행위보다는 사람, 즉 도둑에 중점을 두고 있다. 그 중 盜는 皿(그릇 명)을 보고 입을 벌린 채(欠) 침을 흘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릇이 귀했던 옛날, 누군가 그릇을 보고 탐내는 것을 뜻한다. 참고로 그릇 대신 ‘羊’이 있는 것이 羨(선)이다. 羨望(선망)이라는 말이 있다. 羊은 훔치기가 어려워 부러울 뿐이지만 그릇은 작아 얼마든지 소매 속에 숨길 수가 있다. 따라서 盜는 ‘훔치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흔히 盜를 로 쓰는 경우가 있는데 바른 표기가 아니다.

聽은 몇 번의 변천을 거쳐 현재의 모습으로 정착된 글자로 최초 甲骨文에는 두개의 입에 귀를 갖다 대고 있는 모습으로 여러 사람의 말을 귀로 듣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金文에 오면 ‘聖’과 열 개의 입(十口)으로 바뀌는데 聖人이라면 열 명, 즉 여러 사람의 말을 두루 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현재의 聽자는 小篆(소전)으로 耳, (청), 直, 心이 약간 변형된 형태다. 그러니까 바른 마음가짐으로 듣는 것(耳)이다. 여기서 (청)은 (별)과 土의 결합으로 士의 결합인 壬(임)과는 구별된다. 곧 정당한 방법으로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聽이다.

盜聽이라면 남의 말을 훔쳐 듣는 것이다. 물론 옳은 방법이라고는 할 수 없다. 특히 요즘은 첨단 장비가 발달해 간단한 설치와 조작으로도 얼마든지 상대방의 통화내용을 엿들을 수 있다.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맞는 것 같기도 하다.

鄭錫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478sw@mail.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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