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밍전문가들은 “브랜드에는 그 시대의 흐름과 유행이 그대로 담겨 있다”며 “요즘 젊은 소비자들은 상품과 질을 소비한다기 보다 브랜드 자체를 소비하기를 즐긴다”고 분석한다. 동아일보 미즈&미스터팀은 ‘메타브랜딩’ ‘인피니트’ ‘소디움’ 등 국내 빅3 네이밍회사와 함께 요즘 브랜드가 반영하는 사회 흐름과 젊은 세대의 성향을 살펴봤다.》
▽자연으로 돌아가라〓세기말, 혼돈과 불안의 사회 심리속에서 순수의 상징인 자연으로 돌아가는 경향이 짙다. ‘이플립(이 풀잎의 뜻)’ ‘입스(잎이라는 의미)’ ‘식물수’ 등의 화장품 브랜드, ‘참그루’(식품) ‘참숯’ ‘꿈&들’(바닥장식재) ‘참진흙’(내의) 등이 그 예.
메타브랜딩의 박항기이사는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디지털 문명속에서 개인이 찾고 싶어하는 여유와 휴머니즘의 발현”이라고 분석했다.
▽디지털문명과 숫자〓삐삐나 핸드폰 등을 통해 숫자가 생활속에 깊숙이 자리잡게 되면서 숫자브랜드가 유행.
‘OPT002’ ‘STORM〓292513’ ‘P1492Miles’ ‘lollol’ ‘7nani’등 의류브랜드 등은 기성세대에게는 난수표처럼 보이지만 디지털문화에 익숙한 10대는 무리없이 소화하는 이름들이다.
▽남들은 몰라도 좋다〓인터넷이나 통신같은 익명성의 공간에서 자유롭게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10대들에게 언어의 문법은 쉽게 무시된다. ‘쉽게, 빠르게, 재미있게’가 관건일 뿐. ‘어솨’ ‘고딩’ ‘잼있다’ 등의 언어축약에 이미 익숙한 이들을 타겟으로 한 브랜드가 속속 나오고 있다.
의류 ‘I.N.V.U’ ‘oo·dles'’ 등 의미를 그대로 살리면서 발음나는대로 표기한 브랜드와 ‘쿠키와 크림’을 줄인 ‘쿠 앤 크’처럼 대표문자를 따와서 축약시킨 브랜드가 그 예. 젊은 세대 사이엔 그들만의 세계에 끼어들 수 있는 ‘암호’인 셈.
인피니트의 문행천팀장은 “뜻은 몰라도 상관이 없으며 그 발음이 쉽고 재미나면 통하는 게 10대 브랜드의 특징”이라고 말했다.
▽내 맘대로 풀이〓사무엘 브레히트가 연극에 도입했던 ‘낯설게 하기’도 브랜드에 등장한다. 다양한 해석을 낳아 ‘내맘대로 풀이하기’를 원하는 10대에 파고들었다는 것.
한국통신의 ‘TTL’이 처음 등장했을 때 도대체 무슨 제품인지 모르겠다는 궁금증을 유발했는데 이것이 소비자를 자극해 ‘Time TO Love’(사랑할 시간), ‘The Twenties Life’(20살의 삶) 등의 다양한 해석을 낳고 있다.
▽‘바른생활’은 싫다〓그들은 ‘바른생활’에 나올 법한 좋은 메시지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는게 특징. ‘놈’ ‘지지배’ ‘YAH(야)’ ‘Badboy’ ‘바이러스’같은 의류브랜드처럼 자신들의 ‘느낌’에 와닿으면 그만이라고 생각한다.
소디엄의 박영미이사는 “기성세대의 코드를 거부하며 극단적이고 부정적 이미지까지도 ‘개성’이라는 틀안에 수용하고 있는 것이 요즘의 10대라는 점이 브랜드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호갑·이승재기자〉gdt@donga.com
▼브랜드의 역사▼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브랜드는 1897년 탄생한 ‘활명수’. 브랜드란 개념이 없었던 과거에는 ‘∼우유’ ‘∼맥주’처럼 제품을 있는그대로 알렸다.
▽50년대〓‘불로초’ ‘산삼’ 등 장수를 기원하는 이름이나 ‘백두산’‘승리’‘삼천리’등통일을 상징하는 이름이 많았다.
▽60년대〓한글과 외국어가 결합한 ‘즉석카레’ 등이 등장했고 ‘무궁화표’ ‘핑크표’ 등 일본식으로 ‘∼표’라는 접미사를 붙이는 것이 유행.
▽70년대〓‘홈키파’ ‘퐁퐁’ ‘부라보콘’ 등의 조어 브랜드 등장. 국문 표기 권장정책으로 인해 ‘호빵’ ‘새우깡’같은 우리말 브랜드가 늘어났다.
▽80년대〓88올림픽을 기점으로 외국어 브랜드가 급증. ‘프로스펙스’ ‘르까프’ 등 신발을 중심으로 펴저나갔다. 순우리말로 지어진 상표의 개발도 활발해 ‘살로우만’ ‘꼬깔콘’ ‘고래밥’ 등이 나왔다.
▽90년대〓‘누네띠네’ 등 맞춤법 변형을 통한 브랜드가 나타났으며 후반들어 ‘햇살담은 조림간장’ ‘2% 부족할 때’ 등의 설명식, 문장식 표현이 등장.
〈이호갑기자〉gd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