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책]'생각하는 사물'/미래의 디지털혁명

  •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생각하는 사물' 닐 거센펠드 지음/나노미디어 펴냄▼

과학기술에 관한 한 한국인의 가치판단은 ‘얼마나 첨단인가’에 집중된다. 기껏해야 워드프로세서밖에는 이용하는 기능이 없어도 386컴퓨터를 펜티엄급으로 꼭 바꾸어야만 하는 ‘첨단강박증’.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이 책을 잡았을 때 보일지 모르는 ‘편식성향’을 막기 위해 먼저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당신이 지금 쓰고 있는 컴퓨터는 얼마나 당신의 삶을 편리하게 하는가. 컴퓨터에 총질을 해댄 어떤 미국인처럼 이 문명의 이기가 당신을 긴장하게 만들지는 않는가.

저자는 MIT의 미디어랩에서 TTT(Things That Think. ‘생각하는 사물’)라는 연구컨소시엄을 이끌고 있는 컴퓨터공학자.

‘첨단지상주의자’들에게는 그가 이 책에서 펼쳐보이는 환상적인 연구결과들만 클로즈업돼 보일 지 모른다. 초보자도 거장도 똑같은 소리를 낼 수 있는 컴퓨터 스트라디바리우스, 선글라스나 구두 청바지에 부착해 ‘입을 수 있는’ 컴퓨터, 지폐와 동전의 시대를 끝낼 스마트머니….

그러나 역자(이구형 LG전자 디자인연구소 수석연구원)의 지적대로 그 결과물들만 볼 것이 아니라 왜 저자가 이런 연구에 골몰하게 됐는가를 살펴보아야 한다. 저자는 “현재의 정보기술은 컴퓨터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알아도 사용자가 필요로 하는 것은 알지 못하는 우스꽝스러운 단계에 처해있다. 지금껏 디지털 혁명은 컴퓨터를 위한 것이었지 사람들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고 주장한다.

16세기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가 교황의 면죄부에 반대하는 95조의 대자보를 내걸었듯이 조금은 유머러스한 방식으로 ‘사물사용자의 권리장전’을 제시하기도 한다. 그 내용은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형태로 정보를 이용할 수 있다 △원하지 않는 정보의 송수신으로부터 보호된다 △기술의 요구에 따르지 않고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 따라 저자는 앞으로 고정된 디스플레이와 키보드 마우스로 구성된 현재의 컴퓨터가 사라지고 대신 모든 일상의 사물들이 물리적인 세계나 전자적인 정보와 대화하는 수단이 될 것이라고 예견한다.

그가 그리는 미래지도의 한 예를 보자.‘약장이 사용자가 약을 얼마나 소비했는지를 모니터하고 변기가 주기적으로 대소변을 화학분석해 건강상태를 체크하며 이 두 사물이 의사와 연결돼 건강의 이상을 보고하고 약사에게 연락해 약을 주문할 수 있을 것이다. 냉장고가 주인의 기호와 섭취량을 파악해 우유를 주문할 것이고 세탁기가 세제를 주문할 것이다.’

그러나 쉽게 실현될 꿈은 아니다. 인공지능의 대가인 그의 MIT동료 마빈 민스키가 고백하듯 “컴퓨터는 여섯살짜리 어린이가 가진 상식도 갖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유는 무엇일까. 눈멀고 귀먹고 멍청한 상태로 책상 위에 고정돼 있는 컴퓨터는 인간이 입력해 주지 않는 이상 외부 세상을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일찍이 영국 수학자 앨런 튜링이 제안했듯이 ‘최고의 감각기관을 컴퓨터에 제공하고 교육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288쪽 1만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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