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재천의 책꽂이]'재레드 다이아몬드'

  •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우리 출판계의 베스트셀러 리스트에는 시시껄렁한 경험담이나 잡담을 묶어놓은 책들이 너무 많다. 이 해가 가기 전에 재미도 있고 지식도 얻을 수 있는 책을 원하는 이들에게 재레드 다이아몬드를 권한다.

현재 캘리포니아 의대 생리학 교수인 그는 참으로 놀라운 학자다. 하버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을 졸업하고 일찍이 생리학 분야에 기여한 연구업적을 인정받아 젊은 나이에 과학자로서는 거의 최고의 영예인 미국 국립과학학회의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거기까지는 사실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 의과대학의 생리학 교수로 있으면서 그는 거의 취미생활 삼아 생태학을 한다. 그런데 생태학을 전업으로 하는 나같은 사람을 맥빠지게 하는 것은 그가 생태학계에서도 거의 최고의 위치에 있다는 사실이다. 또한 조류학자 중 뉴기니섬의 새들에 대해 그만큼 많이 아는 이를 찾기 어렵다. 한 분야에서 살아남기도 힘든 현대 학계에서 그는 두 분야에 걸쳐 달인의 경지에 이른 사람이다.

그런 그가 1993년 ‘제3의 침팬지’를 통해 진화생물학자 및 인류학자로서도 또 한번 우뚝 서더니 이어 ‘총, 균, 쇠’를 내놓았다.

‘제3의 침팬지’가 침팬지, 보노보(일명 피그미침팬지)등과 유전자의 거의 99%를 공유함으로써 갖는 인간의 어쩔 수 없이 침팬지 같은 본성과 겨우 1% 남짓의 차이 때문에 지니게 되는 인간성에 대해 논의한 책이라면, ‘총, 균, 쇠’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살아온 인간 집단들간의 문화, 정치, 사회적 차이를 진화생태학적 이론으로 재분석한 역작이다.

퓰리처상에 빛나는 ‘총, 균, 쇠’에는 또 우리 한글의 우수성에 대한 그의 예리한 관찰이 기술되어 있다. 한국인 입양아를 기르는 인연으로 우리 나라에 대한 감정이 각별하기도 하겠지만, 문화의 흐름이 일본으로부터 한국을 거쳐 중국으로 전해졌다는 일본인들의 망상을 그는 종종 지극히 간단한 생태학적 원리를 사용하여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생명은 대륙에서 반도를 거쳐 섬으로 흐른다. 물이 결코 거꾸로 흐를 수 없는 것처럼.

최재천(서울대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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