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독서]'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 입력 1999년 12월 10일 19시 52분


▼'아름답고 새로운 노동세계' 울리히 벡 지음/생각의나무 펴냄▼

경제가 나아지면 일자리가 생기겠지. 사상최대의 호황을 누린다는 미국에서는 구직이 아니라 구인난이라고 하지 않던가….

이렇게 ‘경제가 나아지면’이라는 희망에 들떠있는 사람들은 저자 울리히 벡이 이 책 속에 제시하는 현실분석에 경악할 것이다. “이제 완전고용의 꿈은 완전히 물 건너갔다. 10년 후면 독일인 2명중 1명만이 겨우 전일제 직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단언하기 때문이다.

일부 비관적인 경제학자들이 예견하듯이 언제 ‘금융혼란으로 인한 대불황’이 빚어질지 몰라서? 아니다. 실업의 원인은 역설적이게도 자본주의의 성공이다. 자동화, 구조혁신등을 통해 더 적은 노동으로 더 많이 생산하게 된 자본주의, 힘이나 천연자원 대신 지식이 1차자원이 된 자본주의…. 극빈층과 최상층 부자라는 양 꼭지점을 제외하고는 전 계층의 사람이 직업을 두세개씩 가져야만 하는 노동유목민의 신세에 처했다는 것이 저자의 분석이다.

저자가 주장하는 ‘새로운 노동’은 이러한 ‘위험감수’를 항상적인 삶의 조건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세계가 완전고용,국민국가로 상징되던 ‘제1차 현대’에서 취업노동의 감소, 불확실성, 개인화, 지구화(Globalization)가 핵심용어가 되는 ‘제2차 현대’로 진입했다고 주장한다. 이 시대를 살아가기 위해서는 지금까지의 사회복지정책이나 실업자 부양책 정도로는 안되며 ‘판을 다시 짜야’ 한다는 것.

저자는 ‘제1차 현대’를 취업노동에 근거한 ‘노동사회’로 정의하고 ‘제2차 현대’의 대안으로서 정치지향적이고 자의식이 강하며 ‘네 스스로 하라’는 문화가 지배하는 ‘시민사회’를 제안한다.

이 사회가 지향하는 노동형태는 ‘시민노동’.임금을 받는 ‘취업노동’의 기회는 급격히 감소하지만 가족을 위한 노동, 공공복리를 위한 노동 등 지금껏 사적인 것으로 치부되거나 봉사로 여겨지던 노동은 삶의 질 확보, 공동체의 존속을 위해 그 필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다. 게다가 ‘자본’이 더 싼 임금을 찾아 국경을 넘어 지구화되는 반면 ‘노동’은 오로지 일할 기회를 얻기 위해 만인이 서로 경쟁하는 열세에 처해있다. 바로 이러한 부분이 ‘시민노동’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시민노동자들은 시민단체나 공공기관 혹은 가정에서 공공성격의 노동을 담당하게 된다. 시민노동자에게는 ‘시민수당’이 주어진다. 정식급료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자신의 노동에 대해 연금이나 사회적 서비스를 요구할 수 있다. ‘시민노동’개념의 맹아적 형태인 독일의 ‘부양보험법’은 노인부양시간과 자녀양육시간을 연금보험의 불입기간으로 상정하고 있다.

저자는 시민노동의 활성화를 위해 “마더 테레사와 빌 게이츠의 결합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시민노동’은 단순히 노동의 새로운 형태가 아니다. 사회구성원 대부분을 노동유목민, 실업자로 만드는 허구적인 ‘신자유주의적 유토피아’에 대항하는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민주주의적 가치가 지켜질 수 있도록 하는 구조적 방안이다.

벡은 ‘위험사회’(86년작)이래 독일의 대표적 사회학자로 주목받아온 인물. 앞선 저작까지 포함해 저자의 주요개념들에 대해 꼼꼼하게 주를 단 역자 홍윤기교수(동국대 철학과)의 노력이 돋보인다. 453쪽 1만5000원

〈정은령기자〉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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