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라이프 마이스타일]목탁이/풀 뜯어먹는 개로 살기

  • 입력 1999년 12월 14일 19시 39분


목탁이 아들 김룡이
목탁이 아들 김룡이
목탁이<4·문경 운달산 김룡사 파수견>

사람들은 참 얼토당토 아니한 얘기를 들으면 이렇게 말한다. “개 풀 뜯어 먹는 소리하고 있네.”

개가 염소일 리도 없고 풀을 뜯을 리야 있겠는가만 인간들은 꼭 좋지 않은 일에 개를 등장시킨다. 그래서 내가 태어났다. 인간의 오만한 선입견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나의 이름은 ‘목탁이’. 나이는 4세. 풀 뜯어먹는 개다.

▼산사를 수호하며…▼

뿌리깊은 진돗개 집안에서 태어난 나는 작년 봄, 경북 문경시 산북면 김룡리 운달산의 사찰 김룡사(金龍寺)에 당도했다. 그 몇달전 원인 모를 화재로 절의 절반이 불탄 뒤 스님 5명이 떠나갔다. 나는 쓸쓸한 산사를 수호하는 임무를 띠고 오게 된 것이다.

풍산개인 동갑내기 남편 ‘요령’과의 사이엔 올해 9남9녀를 생산했다. 스님들은 얼굴이 헷갈린다며 이름을 모두 ‘김룡이’라 지어버렸다. 뿔뿔이 흩어지고 지금은 아들 김룡이 하나와 산다.

남편 요령은 지난 여름 스님들을 향해 반갑다며 달려갔다가 손을 잘못 내민 것이 화근이 돼 한 스님을 할퀴었고, “사람을 해(害)하는 개는 용서받을 수 없다”며 진노한 주지스님의 명에 따라 문경시내 건설현장으로 유배를 떠났다. 아! 요령.

▼해탈교를 건너…▼

김룡이는 명부전(冥府殿)옆에 살고, 나는 주지스님이 기거하는 대웅전(大雄殿)옆에 산다. 우리 모자는 봄부터 가을까지 비가 내리기 직전 풀밭에 촉촉한 습기가 살짝쿵 내려앉을 무렵이면 예외없이 도량내 풀밭에서 만나 풀을 뜯는다.

풀을 먹으려면 해탈교(解脫橋)를 건너야 한다. 봄에 파릇파릇 돋아난 새순과 쑥과 강아지풀을 즐겨 먹는다. 한번 먹기 시작하면 40∼50분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아들 김룡이와 나란히 소가 풀을 뜯듯 주욱 전진하며 풀밭을 훑는다.

주지스님을 따라 가을철 운달산 정상에 오르면 호연지기에 억새풀도 뜯어본다. 절의 사무장은 풀밭에 풀이 사라져 황폐해 보인다며 불평이다. ‘사각사각’하는 소리를 내며 풀을 뜯으니 더 얄미워 보인다나.

▼극락의 맛이란…▼

밥도 먹는다. 절이라 고기는 구경할 수조차 없지만. 나를 불쌍히 여긴 주지스님은 읍내에 나가면 소시지를 사와 한덩이씩 던져준다. 이튿날 나는 새벽같이 일어나 운달산으로 들어간다. 결초보은(結草報恩)의 심정으로 꿩과 다람쥐, 청솔모를 잡아와 주지스님이 주무시는 암자의 댓돌 위에 가지런히 펼쳐놓는다. 드시라고. 주지스님은 “흉칙하다”며 혀를 차고는 스님들에게 고이 묻어주라고 지시한다. 차마 나를 혼내지는 못하고.

나는 다이어트도 한다. 스님들에겐 음력 정월과 5월,9월달의 초하룻날과 보름날 아침밥만 먹고 나머지는 굶으며 기도하는 ‘일종식’의 전통이 있는데 어쩔 수 없이 나도 따른다. 스님들은 나에게 “눈물을 흘리는 개만이 건강해진다”며 위로한다. 그래서인지 1년 내내 몸에 벌레가 생기지 않고 몸도 가뿐하다.

▼불자(佛者)로서…▼

채식을 즐기는 나를 보고 사람들은 “역시 절에 있는 개라…”하며 감탄한다. 이른 새벽 예불시간, 목탁 소리가 울려퍼지는 순간이면 나는 대웅전 앞에 선다. 염불소리에 맞춰 “우우우∼”하고 길고 호소력 넘치는 소리를 내지르며 아침을 연다. 스님들은 나를 보면 십중팔구 ‘선문염송’(불서)에 나오는 한 구절을 화제로 삼는다.

‘하루는 조주스님에게 개(拘子)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하고 물으니 스님이 말하기를 없다고 하셨다. 부처님께서 일체중생에게 모두 불성이 있다고 하였는데 왜 개는 없다고 하였을까, 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였다.’

(이 글은 김룡사 스님들의 생생한 증언과 기자의 이틀에 걸친 관찰을 토대로 ‘목탁이’입장에서 재구성한 것입니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동물전문가 美하우프트박사/"영양 보충위한 자구행동 가능성"▼

미국 코넬대 임상동물행동학 교수인 케서린 알브로 하우프트 박사는 생풀을 뜯어먹는 ‘목탁이’와 ‘김룡이’의 행동에 대해 “일종의 일탈적 식사행태인 ‘이식증(異食症)’일 가능성이 높다”고 기자와의 E메일 인터뷰를 통해 밝혔다.

개가 풀을 먹는 것은 애완용 강아지가 갑작스레 자신의 변을 먹는 행위보다 훨씬 희귀하게 학계에 보고되고 있다는 것. 아직 원인이 과학적으로 증명된 바 없으며 다만 비타민 부족 때문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하우프트 박사는 설명했다.

그는 “사찰에 사는 목탁이의 환경을 감안할 때 영양소 부족으로 인한 자구행동일 가능성이 높다”며 “개의 췌장기능을 점검해 만약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목탁이는 채식을 완전히 체화(體化)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애완견 길들이는 법▼

자기를 건드렸다고 해서 주인에게 발작적으로 덤벼드는 개들이 종종 목격된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개가 이처럼 버릇이 없는 것은 사람을 우습게 보기 때문. 늑대를 조상으로 하는 개들은 ‘떼거리’본능을 갖고 있어 동거하는 인간들도 자신의 떼거리로 파악한다.

가족구성원들 속에서 자기 서열을 매긴 후 높은 서열에겐 복종하고 낮은 서열은 우습게 여기는 것.

임상동물행동학 권위자인 미국 코넬대 케서린 알브로 하우프트 교수는 최근 펴낸 ‘수의사와 동물학자들을 위한 가축행동학’을 통해 가장에서부터 어린아이까지 모두 개에게 “앉아, 일어서” 또는 (뼈다귀를 던져준 뒤)“물어와” 훈련을 반복시킴으로써 개가 자기서열을 가족내 최하위로 인식하도록 만들것을 권한다.

훈련은 생후 12개월부터 실시하며 하루 10분을 넘지 않는 게 바람직. 그러나 개를 때리면 안된다. 통증에 대한 공포감 때문에 되레 반항적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안돼!”하고 소리치며 동전을 넣은 깡통을 세차게 흔들거나 물총을 쏘는 등 개를 깜짝 놀라게 하는 방법이 좋다.

〈이승재기자〉sjd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